-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중에서
워낙 여행을 좋아하고
또 제 여행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행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요.
근래에 읽었던 여행책 중에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아주 진솔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결혼 후 탄탄한 직장을 관두고
6개월의 남미 여행을 떠나 부부가 겪은
소소한 일상과 따스한 풍경을
다정하게 속삭이듯 이야기 한 책이에요.
친구가 되기 전엔 멋대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던가
작은 골목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보는
여행자로서의 그 마음이 참 예쁘더라고요.
제 모습도 돌아보게 되고요.
나름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생각하는데
남미는 조금 겁이 났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저도 두려움보다 기대가 더 커지더라고요.
우유니 사막이나 모레노 빙하,
그리고 현지에서 마시는 갓 내린 콜롬비아 커피 같은 것들요.
사실 제 진짜 여행은 서른이 지나서야 비로소 시작됐어요.
그제야 여행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됐고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어도 기꺼이 헤맬 수 있는 용기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여행이 제 삶의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됐어요.
사실 이십 대의 절반 정도를 외국에서 지냈는데
그때는 뭐랄까,
반은 생활자고 반은 여행자 같은 기분이었어요.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설고
가까워진 것 같으면서도 한 없이 먼
그런 마음이 파도처럼 오고 가던 날들.
아주 벅차고
몹시도 외로웠지만
눈부시게 자유로웠던 시간입니다.
당시에는 그래도 힘든 마음이 더 커서
별로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요즘 들어 그때 생각이 자주 나요.
저, 서울에 돌아오면서부터
나이에 많이 예민해지더라고요.
나이가 스물여섯에는 취직을 해야 하고
취직하고 몇 년 차에는 연봉이 이 정도는 돼야 하고
서른이 넘으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서른다섯이 넘으면 집은 몇 평에 살아야 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시계가 있더라고요.
시한폭탄이라도 달린 것처럼
쉼 없이 똑딱거리며 사람들을 재촉하는
너무 빨리 돌아가는 시계.
저는 남들보다 5년은 늦게 자라는 사람인데
그 시계를 쫓아가려니
정말 다리가 찢어질 것 같았어요.
남들처럼 살아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얼마 동안은
주변 사람들처럼
과거에 내가 이뤄온 것들을 점검해 리스트를 만들고
미래에 내게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 준비를 하는
정신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대로 괜찮을지 너무 불안했어요.
주변에서도 걱정하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것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깊은숨을 내쉬기도 했어요.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그런 두려움이 불현듯 다가올 때면
눈물이 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편해요.
그 시계에서 뛰어내렸거든요.
과거와 미래만 있고 현재는 없는
늘 내달리기만 하는 시계의 초침에서 내려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있기로 했어요.
제 일상 역시
하나의 여행이라 생각하기로 결심했어요.
저는
오늘이라는 새로운 날에 불시착한 여행자입니다.
꿈을 좇아 떠도는 여행자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매일 새롭고 즐거워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은
생각할 틈이 없어요.
그저 하루하루를 찬찬히 걸어가며
마음껏 행복할 뿐이에요.
때로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가끔은 외로움에 눈물짓고
어떤 날은 걱정으로 두렵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오늘을
있는 힘껏 신나게 살아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는 맞이할 수 없는 오늘이라는 여행을
마음껏 즐기시기를.
그리고 부디
담뿍, 행복하시길.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