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걱정 말아요, 모든 것은 쓸모가 있으니

- 가쿠타 미츠요, '굿바이 마이 러브' 작가의 말 중에서

by hearida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소설을 써도

평론가에게 혹평을 듣고 자신감이 깡그리 사라졌어도

내가 여태껏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옛사랑에게 차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가쿠타 미츠요, '굿바이 마이 러브' 작가의 말 중에서



벌써 몇 년도 더 전에,

잠시 서점에 들러서 책 사이를 거닐다

우연히 발견한 글이에요.


마음속에 잘 접어 넣어두었었는데

오늘은 서랍을 확- 열어

오랜만에 저 문장을 크게 펼쳐보았습니다.


저는요.

학창 시절부터 책 읽는 걸 참 좋아했어요.

그때는 글도 곧잘 썼던 것 같아요.


올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는

첫 손주인 저를 무척이나 예뻐라 하셨는데

특히 제가 책 읽고 글 쓰는 걸 참 좋아하셨습니다.


아직 동네 서점의 문턱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어렸을 적엔,

매일 출근하실 때마다 한 권씩 책을 사주셨어요.


주말이면 광화문 교보문고나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손잡고 거닐며

책 냄새에 흠뻑 취하게 해주셨죠.


가끔은

아무도 없는 일요일,

사무실에 데려가 일을 보시기도 했는데요.


그럴 땐 저도 곁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 고개를 들면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지으시던 할아버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어린 손녀가 커서 작가가 되는 거였어요.

고운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셨죠.


그런데

자라면서 자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야, 내가 어떻게 감히......'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두려움에 쫓겨

일기장에만 몰래몰래 꾹꾹, 글을 눌러썼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별 것 아닌 제 소소한 글들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글을 쓰는 것이 제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사실

제 글이라고 해봤자

뭐, 대단한 게 없어요.


그리 큰 이상을 품은 글도 아니고

훌륭한 가르침을 담은 글도 아니고

뛰어난 지식을 적은 글도 아니고


그저 다른 이의 좋은 문장을 훔쳐와 나누고

거기에 부족한 제 사전 속 몇 단어를 채우는

그런 정도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서 저는

많이, 아주 많이 행복합니다.


사실은요.

오늘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작은 공모전이지만

상을 타게 됐습니다.

그것도 금상을요.


세상에 수없이 많은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어지럽던 요즘이었는데요.


네 글도 쓸모가 있단다,

누군가 등을 다독여준 기분입니다.

할아버지가 참 많이도 그리운 오늘입니다.


옛사랑에게 차인 경험도

글로 적다 보면

아픔은 잊히고 아름다운 기억이 돼요.


저 역시 이 공간에 글을 쓰며

매일 제 삶을

좋은 추억으로 다시 써가고 있어요.


아무쪼록

이 소박한 행복을

오랫동안 지닐 수 있기를, 하고 바라봅니다.


일상 곳곳에 피어난 작은 행복들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기를.


오늘도 부디

담뿍,

행복하기를. :)



이곳을 다녀가시는

한 분 한 분, 모두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



Venezia, Ital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9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keyword
hearida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