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답이 있다면 마음을 따르는 것뿐

- 요 네스뵈, '레드브레스트' 중에서

by hearida

"그러니까 계산된 위험인 셈이죠. 잘 되면 입이 찢어지도록 웃는 거고, 아니면 완전 엿 먹는 거고요. 위험을 감수하느냐 마느냐. 괜히 도박을 했다가, 어느 날 밤 꽁꽁 얼어붙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봄이 올 때까지 얼어 있는 거죠. 반면 겁이 나서 남쪽으로 갔다가 돌아와 보면, 둥지 틀 곳이 없을 수도 있고요. 사실 이건 우리가 늘 대면하는 영원한 딜레마예요."


- 요 네스뵈, '레드브레스트' 중에서



저는 밖을 다니거나 여러 사람들 자주 만날만큼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약속이 없는 날에는 주로 집이나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요.


어려서부터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항상 가방에 책 두 권 정도는 넣어 다녀야지, 안 그러면 불안해할 정도예요.

그렇다고 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만큼 똑똑하지도 못해서 그냥 읽기만 합니다.

요 몇 달은 추리, 미스터리랑 스릴러 소설에 푹 빠졌어요.

그래서 오래된 명작부터 최근 신작까지 다 찾아 읽고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많이 찾는 게 이 '요 네스뵈'라는 작가예요.

그의 작품 중 해리 홀레라는 형사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리즈가 유명한데요.

'스노우맨'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고, 최근 발표된 '목마름'에 이어 거의 전작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판됐어요.

책마다 분량은 꽤 되지만 플롯도 엄청 촘촘한 데다 반전도 허를 찌르는 게 저는 참 좋더라고요.


어제는 이 작가의 '레드브레스트'를 읽었어요.

책은 현재(1999년~2000년)와 제2차 세계대전의 시점을 옮겨가며 얘기가 진행되는데요.

그중에 현재 시점에서 주인공 해리 홀레와 그 파트너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거기에 바로 저 위의 문장이 나와요.

책 제목 하고도 관련이 있는 '진홍가슴새'에 관한 이야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개똥지빠귀'나 '울새'로 알려졌어요.


이 새는 겨울이 오기 전에 90%가 남쪽으로 떠난대요.

하지만 10%는 여전히 남아있죠.

물론 혹한의 겨울이 오면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지만, 대신 살아남는다면 최상의 위치에 둥지를 틀 수 있는 거예요.

떠난 새들은 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겠지만 여행 중에 도태될 수도 있고, 또 돌아왔을 때 둥지를 틀 자리를 못 찾을 수도 있어요.


책에서도 말하지만 이건 우리 역시 매일 겪는 딜레마잖아요.

모험을 해볼 것이냐, 안정을 택할 것이냐.

예를 들자면, 회사를 관두고 세계 여행을 떠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회사에 남을 것인지 같은 거요.


만약 전자를 택한다면 여행을 마친 후에 백수가 되거나 궁핍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잘하면 여행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해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후자를 택한다면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겠죠.

그래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도 있으니 여러모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테고요.


뭐가 좋다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요.

누군가는 마치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해라 마라 말하는데 저는 그런 답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모험을 하거나 꿈을 따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런 바람들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 역시 무한의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답이 있다면 오직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 그뿐이겠죠.


저도 대학 나와서 유학도 가고 회사도 다녔는데 서른 되자마자 다 집어치웠어요.

글도 쓰고, 해보고 싶었던 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요.

꼭 한량처럼 살고 있는데 사실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물론 즐겁긴 하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이나 고민도 많이 있어요.

그러니 쉽게 제가 살고 있는 이런 삶이 참 재밌으니 한 번 해보시란 말은 못 하겠어요.

무엇보다 저는 저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잖아요.

저마다 살아온 길도 처한 상황도 다 다른데 어떻게 제 것만 정답 수 있겠어요.


다만 한 가지,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어떤 선택이든 그 길을 걷는 사람도 자신,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자신이라는 거요.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저 회사 들어갈 때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부모님이 정말 많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확실히 그 말대로 하니까 대우도 좋고 승진도 하고 좋은 일이 참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저는 매일 울었어요

어떤 날은 책상 바닥에 볼펜을 던져놓고 줍는 척하면서 책상 밑에서도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힘든데 정작 누구 탓도 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최종 선택은 제가 한 거니까요.

저를 괴롭히겠다는 결정을 제가 내렸던 거예요.


우리는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많은 선택을 강요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전공, 직업, 결혼, 출산, 심지어 가치관까지요.

하지만 그건 누가 선택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세상이 정한 기준과 시간에게 함부로 결정할 힘을 주지 말았으면 해요.

정답도 적당한 때도 저마다 다 다른 거니까요.


모험을 택한 사람은 당당해지셨으면 해요.

다들 디디지 못했던 곳에 발을 들여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거잖아요.

그게 얼마나 용감한 건데요.

안정을 택한 사람은 어깨를 피셨으면 해요.

유혹을 뿌리치고 지금의 일상을 성실히 일구는 거잖아요.

그게 얼마나 멋진 건데요.


누구든 다 용감하고 어떤 삶이든 다 멋있어요.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어깨를 피고 당당히 걸어가셨으면 해요.

답이 없는 답안지를 내밀며 이게 맞다고 소리치는 세상의 말은 볼륨을 내려도 좋지 않을까요?

제가 하는 말조차도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 당신이라는 나무는 누구도 꺾을 수 없어요.


부디 반짝이는 햇살을 가득 받고

시원한 물을 흠뻑 머금어

단단히 뿌리내리고 가지를 쭉쭉 뻗어가시길.

그리하여 행복의 잎들이 당신의 나무에 무성히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Zurich, Switzer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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