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안녕, 부디 안녕히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by hearida

"헝클어진 모든 것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헝클어진 삶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당신을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뒤돌아 헝클어진 삶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프지 않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겨울이 오면

당신이 생각납니다.


나는 당신이 참 좋았습니다.


언젠가

당신 생각만으로

내 주위에 온통 새빨간 꽃이 피어있는 듯

향기로웠던 날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낭만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중요한 말을 할 것처럼

조용히 나를 불러 앉히고는

커피 한 잔을 시켜주고

그저 '보고 싶어서' 라 말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벅찼습니다.


그저 그 말 한마디로도

나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니

더 욕심을 내어서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지요.


그렇지만 욕심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은

당신을, 혹은 당신의 전부를

내가 가지겠다는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금만 더 가까이

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따스한 집이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힘들 때면

언제든

나에게 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떠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돌아섰습니다.

조심스레 손바닥에 올려두었던 작은 꽃잎이

작은 한숨 한 번에

흔적 없이 멀리 날아간 것처럼.


그리하여 나는 울었습니다.


울다가 지친 날에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다가 지치면 다시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흘렀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더 이상 걷지도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겨울이 와도

나는 이

웃을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당신도 그러기를 바라겠습니다.

찬 바람이 불어오니 당신이 생각나

이렇게 잠시

안부 전합니다.

잘 지내세요.


안녕, 부디 안녕히.


Prague, Czech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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