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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10. 2016

그때의 우리, 잘 지내고 있나요

-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 중에서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아요. 선생님은 좀 그럴듯한 직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전 그냥 기술자가 되고 싶어요. 한 가지 기술로 오랫동안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그런 기술자, 그게 제 꿈이에요. 배우는 데 좀 힘들어도 오래 할 수 있는 일 말이에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꼭 그런 기술자가 되어서 우리 동준이 대학도 보내주고, 착한 여자 만나서 잘살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는 거, 그게 제 소원이에요. 선생님은 제 소원이 시시하다고 생각하시죠?"

 동수는 명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구, 난 동수가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좀 아쉬운 거야."

 "선생님은 저를 너무 크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절 믿어 주시는 건 좋지만요, 부담스러워요."

 명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자신에게 물었다. 아직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듬직한 형이 되는 것이 작고 보잘것없는 꿈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명희는 또 숙제가 밀린 아이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 중에서



2016.12.16. '괭이부리말 아이들' 첫 장에 - heari.da


이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처음 읽은 건

2001년, 스무 살의 12월이었어요.

책 맨 앞장에 써 놓은 말처럼

'착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니

그때의 느낌을 정확히 기억하긴 사실 어렵죠.

다만 여전히 책장 한쪽에 소중하게 꽂혀 있는 걸로 보아

참 좋아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읽은 후에

가슴에 스미듯 따뜻함이 전해졌던 것도 같고요.


하지만,

참 이상하죠.


이제 서른다섯이 되어 이 책을 읽으니

따스함보다는

먹먹함이 온 마음에 가득합니다.


그건 아마


책이 끝났다 해서

삶이 영영 끝난 것이 아님을

그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고된 매일은 쉬이 나아지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국민학교 세대예요.


6학년 때 즈음인가

초등학교로 바뀌었던 것 같은데요.


그 시절 저희 동네는

학교를 가운데 두고 두 곳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한 곳은

양옥집이 늘어선 주택가였어요.

이층 집에 마당이 있고

그곳엔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자라는 곳.


또 한 곳은

판잣집이 공장과 함께 늘어서 있었지요.

그곳을

사람들은 달동네라 했습니다.


달동네.

이름이 참 예쁘죠.


어려서 달동네,

하고 말하면

입 안에 알사탕이 도로로- 하고 굴러가는 것 같았어요.


달이 만든 동네일까

달이 사는 마을일까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그려 넣기도 했었죠.


그때 우리는

모두 함께 자랐습니다.


물론

필통 한가득

새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오는 친구도 있었고

구멍 난 책가방에

김칫국물이 묻은 교과서가 들어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육성회 모임날 곱게 차려입고

환한 미소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어머니가 계시듯

반지하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며

피곤한 표정으로 실밥을 정리하는 어머니도 계셨죠.


그래도 우리는

아마 함께 자랐던 것 같습니다.


미술 시간에

준비물을 안 가져온 친구에게

100원에 네 장하는 도화지 한 장을 선뜻 건네며

지난 추석 선물로 삼촌에게 받은 새 크레파스를 나눠쓰거나


학교를 마치면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만화를 보거나


토요일이면

여의도로 달려가

자전거도 타고 롤러스케이트도 타며

무릎에 상처를 가득 냈지요.


그렇게

우리가 자라는 동안


주택가에 살던 누구네 집은

부도가 나서

더 이상 100원에 네 장 짜리 도화지를 사지 못하게 되고


다 기울어가던 판잣집은

재개발이 되어

라면을 먹던 누구네 집은

흔적도 없이 부서졌지요.


감나무도 대추나무도 베어나가고

낙서로 서로를 놀려대던 담벼락도 허물어지고

꼬불꼬불 이어지던 골목길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고

마을 한가운데 있던 우물엔 시멘트가 메워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변의 세상이

그렇게 무너지고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는 동안


학교에 가거나

싸움을 하거나

멀어지거나

등을 돌렸지요.


'괭이부리말 아이들' 책을 덮고 나니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납니다.


50원짜리 뽑기로 물고기 엿을 함께 바꿔 먹고

100원짜리 순대 꼬치와 떡꼬치 하나씩 손에 들고 뛰놀던

그때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지.

모두 잘, 있는지.


책 끝에 담긴 작은 희망 하나라도

마음에 품고 사는지.


그때의 너와

그때의 나.


밟아 죽이기도 징그러울 만큼 큰 바퀴벌레들이 동수, 동준이와 더불어 사는 유일한 생명이었다.


혹 지금의 내가

내 욕심에 눈이 멀어

좋은 사람은커녕

바퀴벌레처럼 차마 밟아 죽이기도 힘든 생명은 아닌지.


오늘은 뒤를 돌아

잠시 저를 되돌아봅니다.


갑작스레 차가워진 바람에

몸이 얼고

마음이 시린

그런 사람은 부디 없기를.


아무쪼록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









Firenze, Ital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9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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