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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Nov 03. 2016

당당히 행복을 권하기 위해, 이제

-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중에서

"불쾌했다. 월급은 많이 받고, 수업은 적게 하고, 게다가 숙직까지 면제받다니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는가. 제멋대로 이런 규칙을 만들고서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 있을까. 무척 불만스러웠지만, 거센 바람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혼자서 불평을 늘어놓아 봤자 소용없다고 했다. 혼자든, 둘이든 올바른 불평이라면 통하지 않을 리가 없다. 거센 바람은 'might is right'라는 영어를 인용해서 설명을 덧붙였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물어보았더니 '강자의 권리'라는 의미라고 했다. 강자의 권리쯤이라면 옛날부터 알고 있다. 새삼스럽게 거센 바람에게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된다. 강자의 권리와 숙직은 별개의 문제다 너구리랑 빨간 셔츠가 강자라니, 누가 인정한단 말인가."


"비겁한 놈들이다. 스스로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할 수 없다면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증거만 잡히지 않으면 딱 시치미를 뗄 작정으로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다. 나 역시 중학교 때는 곧잘 장난을 쳤다. 하지만 누가 했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꽁무니를 빼는 비겁한 짓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분명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안 한 것'이다. 거짓말을 해서 벌을 피하려고 했으면 처음부터 장난 같은 건 치지도 않았다. 장난과 벌은 따라다니는 것이다. 벌이 있기 때문에 장난도 기분 좋게 칠 수 있다. 장난만 치고 벌은 마다하는 그런 비열한 근성은 대체 어느 나라에 있냔 말이다."


-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중에서



이건 자랑인데요.

저,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참 잘 나갔어요.


상사는 늘 말했죠.


나는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 정상까지 기어 올라오는 호랑이 새끼만 키운다.


그러니

자신이 주는 시련을 견디고 올라오라고.

그러면

내가 너에게 성공을 주겠노라고요.


아마 제가

조금만  더 똑똑하고

또 승부욕이 있었더라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

조금만 더 나이가 들어서

연륜이 좀 있었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거였어요.


만약

떨어진 바닥에

부드러운 잔디와

향기로운 들꽃이 피어있고


토끼도

다람쥐도

코끼리도 뛰어노는

즐거운 들판이면 어쩌나요.


당신이 실패했다 단정하는 그곳이

나의 낙원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지만 저는

그 후로도 제법

그곳에서 버텼어요.


실패자로 보이기는 싫었거든요.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초식 동물로는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어째요.

제 낙원은

결국

그 들판이었던 것을.


저는

상대방을 물어뜯기 위해 밤잠을 설치다

명품 가방을 흔들고

높은 힐로 출국장에 향하는 맹수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며

동전 소리가 나는

낡은 가방을 흔드는 초식 동물이

더 맞는 것을.


예의가 없을수록

강한 자이며


상대의 골수를 빨아먹고

버릴 날을 고르는 것이

높은 자이며


소모품이 될 것인지

소모품의 주인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는 강요에

매일 시달리는 삶.


그것이 잘난 자의 훈장이라면

저는

못난 자의 흙더미를

기꺼이 뒤집어쓰고 살겠어요.


이제

제가 있을 곳에

드디어 있으니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엔


맹수의 삶을 곡해하고

강자의 권리를 탐하며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네요.


실망할수록

화가 날수록

고개를 돌리기보다


이제는

더 깊이 들여다봐야겠어요.

더 꼼꼼히 지켜봐야겠어요.


도련님의 말처럼

혼자든 둘이든

올바른 불평이라면

통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야

제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 글을 읽어주는 분들께


당당히

행복하시라, 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추운 날입니다.

하지만

깊은 마음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는 날.


그 불길에

우리 마음 데이지 않기를.

그 불길로

세상 온갖 나쁜 것들을 태워버리길.


행복하세요.

아무쪼록 오늘도

담뿍, 담뿍 이요.

감사합니다. :)



Cologne, German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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