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중에서
이건 자랑인데요.
저,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참 잘 나갔어요.
상사는 늘 말했죠.
나는 절벽 밑으로 떨어뜨려 정상까지 기어 올라오는 호랑이 새끼만 키운다.
그러니
자신이 주는 시련을 견디고 올라오라고.
그러면
내가 너에게 성공을 주겠노라고요.
아마 제가
조금만 더 똑똑하고
또 승부욕이 있었더라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을 거예요.
아니,
조금만 더 나이가 들어서
연륜이 좀 있었더라도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거였어요.
만약
떨어진 바닥에
부드러운 잔디와
향기로운 들꽃이 피어있고
토끼도
다람쥐도
코끼리도 뛰어노는
즐거운 들판이면 어쩌나요.
당신이 실패했다 단정하는 그곳이
나의 낙원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지만 저는
그 후로도 제법
그곳에서 버텼어요.
실패자로 보이기는 싫었거든요.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초식 동물로는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어째요.
제 낙원은
결국
그 들판이었던 것을.
저는
상대방을 물어뜯기 위해 밤잠을 설치다
명품 가방을 흔들고
높은 힐로 출국장에 향하는 맹수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며
동전 소리가 나는
낡은 가방을 흔드는 초식 동물이
더 맞는 것을.
예의가 없을수록
강한 자이며
상대의 골수를 빨아먹고
버릴 날을 고르는 것이
높은 자이며
소모품이 될 것인지
소모품의 주인이 될 것인지 선택하라는 강요에
매일 시달리는 삶.
그것이 잘난 자의 훈장이라면
저는
못난 자의 흙더미를
기꺼이 뒤집어쓰고 살겠어요.
이제
제가 있을 곳에
드디어 있으니
저는 참 행복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엔
맹수의 삶을 곡해하고
강자의 권리를 탐하며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네요.
실망할수록
화가 날수록
고개를 돌리기보다
이제는
더 깊이 들여다봐야겠어요.
더 꼼꼼히 지켜봐야겠어요.
도련님의 말처럼
혼자든 둘이든
올바른 불평이라면
통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야
제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 글을 읽어주는 분들께
당당히
행복하시라, 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추운 날입니다.
하지만
깊은 마음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는 날.
그 불길에
우리 마음 데이지 않기를.
그 불길로
세상 온갖 나쁜 것들을 태워버리길.
행복하세요.
아무쪼록 오늘도
담뿍, 담뿍 이요.
감사합니다.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