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오늘도 부디, 무사하기를

-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by hearida

"우리가 자기를 들여다보지 않아서 우리 눈빛을 잃은 것처럼, 이 세상이 이토록 불안한 구조로 가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서로의 삶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좋은 눈빛에 흔들렸으면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쉬지 않는 눈빛과 마주쳤으면 한다. 그것이 다행한 일이다."


-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는 초입.


그때의 날들은

유독

길고 막막하고 외로웠어요.


모든 것에 곧잘


이제는 할 수 없어
더 이상은 어렵지


그런 말을

스스로 하거나

또는

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혹은

모험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입버릇처럼 저,

그때의 저를 두고


천 길 낭떠러지 절벽 끝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두 다리에 힘 빡 주고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조금만 방심하면

아득한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텐데

그렇다고

낭떠러지에서 멀어질 힘도 없이


매일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때 제가 바랬던 건

그 절벽 끝에서 저를 꺼내 줄

왕자님이 아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너무 쉽게 제 손을 잡고 끌어내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백마 탄 왕자님은


아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설령 있다 해도

저에게는 맞지 않으니까요.


저는

그저 동지를 바랐어요.


함께 서서 응원해줄 사람.

절벽 끝에서 그 거센 바람을 함께 맞으며

그래, 오늘도 잘 버텼다

따스하게 말해줄 사람.


그거면 됐어요.

저는

저 스스로의 힘으로

잘 서 있을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

힘이 모이면

그 절벽에서

스스로 헤쳐나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제 사랑은

그러니 제 사람은

그저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제 눈을 바라보고

제 어깨를 두드리며

오늘도, 수고했다

그 한마디 해주면 되는 거예요.


감사하게도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났네요.


이제는 함께 그 절벽 끝에 서서

바람을 견디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런 매일을 보내고 있어요.


우리는 종종 착각해요.


절벽 끝에 선 사람에게 필요한 게

멋진 왕자님이나

기적 같은 행운이나

혹은

신이 내린 동아줄 같은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잘 버티고

잘 헤치고

잘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떠한 요행보다

따스한 말과 위로,

진실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잘하고 있어요, 우리.


이 고된 절벽 끝에서

참 잘 버티고 있어요.


그러니 누구에게도

자신에게조차

할 수 없다거나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대신 우리

서로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요.

대견하게 매일을 버티는 우리,

잘하고 있다 말해줘요.


잘하고 있는 당신,

그리고 나.

우리.


오늘도 부디

그 절벽에서

그 바람 속에서

무사하기를.


그리고

아무쪼록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감사해요, 항상. :)



Mount Rigi in Lucern, Switzer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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