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중에서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마련이라고
엄마나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이야기들을
이제 저도
친구와 마주 앉아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어요.
확실히 서른을 넘기고 나니
뭐든 금방 회복되지 않고
이곳저곳이 자주 아파요.
그렇다고 몸에 좋은 걸 챙겨 먹지도 않고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게으름뱅이라서요.
결혼을 앞두고
어제는 보건소에 가서 산전검사도 받고
큰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받는
몇 가지 검사들을 했는데,
고질적으로 고생하던 게 기어이 터졌네요.
당장 수술하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심장이 덜컹, 하고 내려앉았어요.
뭐, 다행히 큰 수술은 아니어서
입원-수술-퇴원까지 2박 3일이면 된대요.
결혼은 내년 4월인데
신혼집을 빨리 얻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이사해요.
그래서 요즘
짐 싸고 살림 준비하느라 정신이 좀 없어요.
그런데 다음 주에
바로 수술을 하기로 해서
아무래도 짐싸기는
이번 주에 후다닥- 해버려야 할 것 같아요.
발등에 불이 붙었어요.
신기하죠.
뭐든, 비슷한 것들은요.
한꺼번에 오는 것 같아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무언가를 정리하는 거든요.
짐을 싸면서
그동안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 잘 보이는 거예요.
재밌기도 하고
가끔은 쓰리기도 한 추억이죠.
거기에
이렇게 말하면 중병이라도 걸린 것 같아 민망하지만
왠지 수술한다고 하니까
지난 삶들을 돌아보게 돼요.
내가 걸어온 길이 어땠나 하고요.
좋았던 기억도 있고
아프고 슬펐던 날들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들은 옅어지는 것 같아요, 확실히.
그랬구나, 하는 정도예요.
헌데 이상하게요.
미안한 일은 잘 안 잊혀요.
살면서 지었던 잘못들,
사과하고 싶은 사람들,
그런 건 돌아서면 늘 그 자리에 있어요.
잘못된 일을 무를 수도 없고
고해성사하듯 길에서 크게 소리 내 말하기도 힘들어요.
미안하다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미 닿지 않는 곳에 있고요.
늘 마음뿐이죠, 말뿐인 죄책감 같은 거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저를 성장시켜요.
지나온 시간 동안 제가 저지른 죄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정의를 세우고
저를 곧게 일으켜요.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고
그렇게 살아요.
자기만 아는 그런 비밀이 있죠.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잖아요.
다들 그런 거죠.
진짜 중요한 건
그 죄와 마주한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요.
저질러버리고 끝이 아니라,
그러했으니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 말이에요.
대단한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제 내가 지은 죄보다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우리의 오늘이
조금은 더 따스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겨울로 익어가는 햇살이
우리 마음의 음지까지
잘 깃들기를.
그리하여 우리 오늘도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항상, 감사해요.
진심으로
언제나 언제나요.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