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두고두고, 찬찬히 바라보면

- 박완서, '노란 집' 중에서

by hearida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아무도 그의 쓸모를 발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견처럼 보람 있고 즐거운 일도 없다. 누구나 다 알아주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들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은 더 큰 행복감이 될 것이다."


- 박완서, '노란 집' 중에서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인데요.

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이

실연을 했어요.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엉엉 우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참 예쁜 친구였거든요.

밝고요.

제가 남자라면 업고 다닐 텐데

상대는 제 친구가 짝이 아니었던지

잔인하게 이별을 고했어요.


그날 여자 넷이서

술을 엄청 마셨어요.

창고에 있는 술까지 다 없앨 기세로

죽일 놈, 살릴 놈 해가며

술 반에 욕 반인 술자리였거든요.


그때 제가

그런 말을 했어요.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쓰레기통에 있으면 그저 쓰레기일 뿐이야.
그러니 너라는 꽃에 어울리는 좋은 꽃병을 만나.


내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나를

쓰레기 다루듯 함부로 하면

그 사람에겐 그저

그렇게 값어치 없는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내가 무너질 때에도

내가 값지고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나를 일으켜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만은 나,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살면서 깨닫게 되는 건데요.

세상에 있는 것 중에

이유 없이 생겨난 것도 없고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것에는 다 뜻이 있죠.


다 허물어질 것 같은 담벼락도

길을 헤매는 작은 동물들에게는 햇빛을 가리는 쉴 곳이 되어주고요.

찢어지고 구겨진 종이조각도

급하게 기억할 것이 있는 누군가에겐 소중한 메모지가 되고요.

그런 거죠.


하물며 사람은요.

혼자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듯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우린 결코 무의미할 수가 없어요.

깨닫지 못하는 중에도 누군가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뭐,

저도 싫은 사람은 있어요.

사실 되게 많아요.

쟤는 뭐가 잘나서, 싶은 애도 있고 그런데요.

그런 애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더라고요.


세상은 그래서

흑과 백이나 선과 악이 아니라

나와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별로인 것으로

그렇게 나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더 곱게 보이려면

아마 제 그릇을 넓히고 넓혀서

맞는 것도 더 늘이고

좋아하는 것도 더 많아져야겠죠.


그러려면

자세히 봐야 할 것 같아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두고두고 찬찬히 지켜보면

맞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헤아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부디 오늘도

담뿍, 담뿍 행복하시길.


감사해요, 항상.

언제나 언제나요. :)



bangkok, Thai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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