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 요 네스뵈, '미드나잇 선' 중에서

by hearida

"왜 아직도 날 울프라고 부릅니까?"

"당신 입으로 그게 이름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니 그렇게 불러야죠. 당신이 다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할 때까지는요. 사람은 누구나 가끔씩 자기 이름을 바꿀 수 있어야 해요."


- 요 네스뵈, '미드나잇 선' 중에서



제 이름은요.

아주 아주 아주 아아아아아주 흔한 이름이에요.

진짜로요.


학창 시절에 꼭 같은 이름인 친구가 반에 한 명씩은 있어서요.

OO이 A, OO이 B 하거나

큰 OO이, 작은 OO이 그랬어요.


원래 저희 엄마는요.

제 이름을 '서형'이라고 짓고 싶었대요.

책 서에 책상 형, 책상에서 책 읽는 아이요.


이름은 뜻대로 짓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 아이는 매일 책상에서 책 읽는 아이가 되었으니

엄마의 바람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 것 같아요.


사실, 뭐. 제 이름을 그렇게 싫어하진 않아요.

딱히 불만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커서는 지금 쓰는 필명인 '헤아'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저 구절을 읽는데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뭘로 하지?


우선, 지금 쓰는 헤아를 하는 것.

헤아리다, 라는 뜻도 있고요.

일본어로 '헤야'는 방이니까, '저만의 방' 뭐 이런 뜻도 좋고요.


아니면 헤아는 지금도 많이 쓰고 있으니까

완전 새로운 이름으로 해볼까.

한 번 들으면 '엇!' 하는 이름으로요.


책을 좋아하니까 '책이' '독서' '책책이'나

아니면 쓰는 것도 좋아하니까 '낙서' '써요'......

이건 좀 무리순가요??;;;;;;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또 괜히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엔, 이름이 뭐 대수라고 싶어 졌어요.


이름이란 게 다 무어란 말인가요?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해도 그 달콤한 향기는 변함이 없을 거예요.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맞는 것 같아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죠.


제가 흔하디 흔한 제 이름으로 불리든

헤아로 불리든 바보로 불리든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저는 여기 그대로 있어요.


가끔 어떻게 불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이름 말고도, 그 앞에 붙는 것들.

학교, 회사, 직함, 배경 같은 거요.


하지만 입으로 부를 수 있는 그 많은 이름들과 수식어보다

그 포장 안에 감싸인 진짜를 알아보는 눈,

저는 그런 눈을 가지고 싶어요.


그 눈은 얼굴에도 있겠지만

귀에도 있고 손에도 있고

마음에도 있어요.


매일 그 눈을 깨끗이 닦다 보면

언젠가는

겉으로 보이고 들리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그때까지

부지런히 공부해야겠어요.

이름에 포장에 휘둘리지 않도록요.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담뿍, 담뿍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감사해요, 항상. :)





Pamukkale, Turke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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