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가끔은, 모른 척

-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중에서

by hearida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이거든."

원장 선생님은 말을 하곤 씨익, 짧게 웃었다. 그러곤 반대쪽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그의 등에 대고 꾸벅,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중에서




어려서는 종종

사람들에게 쉬이 마음을 줬어요.


멋대로 가슴을 열어 보이곤

상대가 할퀴곤 간 자리를 오래 바라보며

울며 아파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곧

등을 돌렸어요.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더 울고 싶지 않아서

금세 마음의 문을 닫고 돌아섰지요.


언제부턴가

함부로 곁을 내주지 않게 되었어요.


인간관계 다 거기서 거기,

이런 말만 읊조리며

처음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서있게 됐죠.


사람이 무섭고

사람이 밉고

사람이 못 미덥고.


정확히 언제라 말할 순 없지만

그렇게 돼버린 후

저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이미 오래전에 떠난,

혹은 떠나버린


과거의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새삼스레 말을 겁니다.

반기지도 않는데요.


그러면

다 나았다 생각했던 상처에 다시 피가 고이고

멎었던 울음이 또 터져 나와요.


그렇게 그들은

지금으로 소환되어

처음처럼 또 상처를 주는 일을 되풀이합니다.


나만 아팠던 건 아닐 텐데.

나만 다친 건 아닌데.

그랬는데,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제 그만

지나간 죄는 잊어도 좋으련만.

모른 척해야 잊혀지련만.


스쳐간 모든 것들에

고운 마음, 따뜻한 시선만 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오늘.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부디 이 하루도 담뿍,

담뿍 행복하시길.


감사합니다,

항상. :)




Riomaggiore, Cinque Terre in Ital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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