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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Apr 29. 2017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치하야 아카네, '벚꽃이 피었다'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어질 수는 있다. 아름다운 것, 다정한 것, 강렬한 것.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것들을 접하면 사람의 마음은 한순간에 움직인다. 그럴 때에 교감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무척 행복한 일이다. 그 순간은 분명 그 사람을 지탱해줄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해야만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혹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말이에요. 아, 그렇다면 그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요. 왜냐면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누구와도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옷긴 한 번 스치지 못한 채, 영원히 혼자만의 섬에 갇혀 살아가야 할 테니까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요. 상대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가능하다면, 아마 그건 상대를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아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그 '조금'의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십상이죠. 설령 그것이 부모 자식이라도. 운명의 연인이라도. 아니, 심지어 자기 자신이라도요.


 그러니 참 다행입니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니.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이어질 수 있으니. 이것이 어쩌면 그 기나긴 시간 인류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과 다정한 것, 강렬한 것과 마음을 뒤흔드는 것들이 지천에 가득합니다. 우리가 그들과 마주하는 순간, 움직이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부딪히죠. 그리고 그 충돌로 생긴 틈을 비집고 각자의 마음에 고여있던 진심이 상대를 향해 흘러요. 그렇게 인간과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엮이고 말지요. 그건 이해와는 별개인, 기적과도 닮은 그런 것이에요.


 벚꽃을 떠올리며, 벚꽃 아래서, 혹은 벚꽃을 떠올리며, 때로는 벚꽃 때문에. 이 책에는 그런 일곱 가지의 사랑이 그려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과거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또 마음을 접는 그런 이야기. 어쩌면 그저 그런 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막상 포장을 뜯고 안을 들여다보니 전혀 그렇지 않아 기쁘네요. 마치 한밤에 가득 피어있는 벚꽃 같아요. 아름답지만 기묘하고 또 어둡지만 몹시도 환한 느낌이죠.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 하얀 벚꽃이 책 곳곳에 문장으로 피어 가득합니다. 


 벚꽃이 바람을 따라 흔들릴 때, 춤추는 잎 사이로 언뜻언뜻 포근한 볕이 살갗을 찌르고 사라졌다를 반복하면 겨울 내 잠을 자던 마음이 일렁여요. 그 일렁임이 도통 멈추지 않아 멀미를 하고 말죠. 자고로 멀미란 한 번 시작되면 그곳에서 내리기 전까지 계속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봄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요. 봄은 본디 누구에게나 반가운 것은 아니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그 역시 한 계절에 불과하므로. 어차피 지나가버릴 것이기에. 


 봄이에요. 한 봄이 가득합니다. 그 사이로 벚꽃이 피고 또 지고, 무성한 잎은 초록을 한껏 머금었어요. 그런 날에 베란다에 앉아 '벚꽃이 피었다'를 읽고 있자니 어지럽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하고 마네요. 오래도록 가시지 않을 취기에, 날이 저물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고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


 이해할 수 없다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이 책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득합니다. 세상과, 문장, 그리고 사람과 또 사람들. 그리하여 안심합니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기꺼이 마음을 내어줘 버리고 마는 내 주변의 것들을 떠올리며.



 



<봄, 여우에게 홀리다> 중에서


 무엇보다 사람들이 통과해 가는 곳이라는 점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누구 하나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나는 오래된 건물과 전시품들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건조한 시간 속에 조용히 묻힌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나이가 든다는 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져간다는 느낌이다. 육체적으로는 작은 글자들이기도 하고 간판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는 일반적인 상식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타인의 감정이기도 하다. 점점 좁아져가는 투명 상자에 갇히는 느낌. 언젠가 그런 상태가 나에게도 찾아오리라 생각하니 텅 빈 위장처럼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선은 말이죠, 자기가 긋고 싶을 때 그으면 되는 겁니다."
 언젠가 오자키 씨는 그렇게 말했다.
 "위험하다 싶을 때까지 눈길을 빼앗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형異形에 신이 머문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좋고 무엇이 옳은지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는 없지요. 그런 걸 보면 옛날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관대했어요."
 알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두렵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다. 알고 있지만 공포심을 이겨낼 수가 없다, 전부터.
 오자키 씨는 두렵지 않은가요? 항상 그렇게 즐거운 듯이 이상한 말만 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 드러내고, 오만한 구석도 없고.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주다가 누군가에게 거절당하거나 오해를 받는 게 두렵지 않나요?
 나는 두렵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허락하거나 기대거나 끌리는 것이 두렵다. 멋대로 나를 해석하거나 나에게 환멸을 느끼거나 나를 싫어하거나 나를 배신하는 것이 두렵다. 나를 부정해버린다면 어떻게 서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럴 거라면 혼자가 더 낫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고, 소모될 일도 없다.
 "다른 사람 감정을 제대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이 이상할 리 없지요. 당신의 흔들림은 고동처럼 생생하고 따뜻해요. 게다가 어떤 동물이든 상처를 받으면 도망치는 법입니다. 두렵지 않다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도망쳐도 괜찮습니다."
 "눈앞의 선악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답이 바로 나온다면, 그 답은 별 가치가 없으니까요. 답이 없는 게 오히려 당연한 거죠, 원래는요."




<하얀 파편> 중에서


 결국 타인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여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좋아한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진심을 알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에 휘둘리는 게 우스워졌다. 서로의 마음이 어찌 됐든, 사람들은 외로우면 위로해줄 상대를 찾기 마련이다. 어디서부터가 몸의 행위이고, 어디서부터가 마음이 들어 있는 행위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안다고 한들 일어나버린 사실에서 변하는 것은 없다. 그저 잠시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놓고 사실에서 눈을 돌리든가. 어느 쪽이 됐든 의미가 없다.
 "그래. 방법은 잘못됐을지도 몰라. 서로 상처를 줬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떤 마음이었든, 그때의 정직한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린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거야. 이젠 밉지 않지? 지금이라면 그때 마음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있잖아, 사람들이 꽃구경을 하는 건, 벚꽃을 매해 바라보았으면 하는 건,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서야. 누군가와 만든 추억을 반복되는 사계절에 새기고 싶은 거야. 벚꽃은 매해 피니까. 봄이 되면 저절로 기억이 나잖아. 그러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난 그렇게 생각해. 그 사람은 행복했던 게 아닐까? 우리 엄마가 언제나 그랬어. 벚꽃은 밤에 보는 게 최고라고. 꽃잎만 떠 있고 우툴두툴한 줄기나 벌레 같은 것들은 다 어둠 속에 녹아버리니까, 제일 아름다운 것만 볼 수 있다고. 그 사람, 자기를 둘러싼 복잡한 것들은 다 지워버리고 오직 살아 있는 자신의 모습만을 누군가 기억해주었으면 했는지도 몰라."
 느릿느릿한 어조로 어른인 체한다. 도대체 여자들은 만만치가 않다. 미덥지 못해 보여도 가만히 빛나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벚꽃이 비 저편에 더 있다. 주위는 완연한 어둠이다.
 아주 조금만 시각을 바꿔도 세상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쏟아지는 이 성가신 비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리듬으로 변하듯.




<첫 꽃> 중에서


 나는 학교를 너무 자주 빠지는 통에 공부는 못하지만, 반 아이들보다 말을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단어 수가 아니라 그 뜻이나 맛을 잘 안다. 예를 들어 실망이라든가, 굴욕이라든가, 수치라든가, 후회라든가, 고독이라든가. 나로 말하자면, 그 말들을 입에 넣고, 씹고 또 씹고, 눈물이 번질 만큼 쓴 그 맛을 혀에 배어들게 하면서 겨우 삼켜왔으니까. 그리고 삼킨 다음에도 그 말들은 나의 내장을 마구 휘저었으니까. 정말이지, 아주 잘 안다.
 다들 불안한 것이다. 언니도, 어머니도, 나도. 불안하고 쓸쓸해 혼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길할지도 모른다. 아름다워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누군가가 괜찮다고 해주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어제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 흰 벚꽃처럼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슬프지는 않았다.




<엘릭시르> 중에서


 "선을 긋는 것 자체가 취하지 않았다는 증거야. 취한다는 건 얼마나 바보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거니까."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물 흐르는 소리를 듣자, 이런 식으로 모든 게 다 흘러가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걸음이 멎고 말았다. 어두운 맨홀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내 마음도, 내 시간도, 모든 것이 이대로. 들떠 있던 기분이 가라앉고, 견딜 수 없이 쓸쓸해졌다.
 입술이 닿은 찰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담배 냄새와 따스한 몸 냄새에 휩싸여, 몸이 위로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내 자신조차 잊고, 내가 나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건 정말 무서운 느낌이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생각하지요. 어떤 행동에든 나름의 의미와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위악을 떠는 것처럼 보여도,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쩌면 완성을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내 행동은 어디에도 닿지 않는 것 같아요."
 "꼭 지금, 모두 정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뒤돌아봐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까."




<꽃보라> 중에서


 하지만 맛있는 것을 입에 넣는 순간, 사람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제아무리 날을 세우는 사람이라도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진짜 표정을 볼 수 있어.' 게이코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괴로운 기억도, 거스러미가 일어난 마음도, 맛있는 음식은 순식간에 치유해준다고. 그래서 정말로 맛있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아마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는 것일 테죠."
 남자는 불쑥 중얼거렸다.
 무서운 게 없다면 소중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아픔이 없다는 건 기쁨도 없다는 것, 감각이 없는 세계에서 산다는 것. 게이코를 잃고 나서 그것을 알았다.
 "벚꽃은 좀 별로예요. 예전에 벚꽃 꽃잎으로 목걸이를 만들었거든요? 실로 연결해서. 엄청 예뻤어요. 근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다 쪼그라들고 검어져서 더러운 양귀비 깻묵처럼 변해 있는 거예요. 사라지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이든 마법처럼, 사라지는 거구나. 부푼 마음도, 행복한 기분도 한순간에. 맛있는 과자도 마찬가지네, 행복은 한순간이로구나."
 벚꽃은 매해 피는데 언제나 볼 때마다 눈길을 빼앗기고, 지칠 줄 모르고 가슴에 안타까움이 복받친다. 행복한 꿈같은 나날이 다시 활짝 피는 게 아닐까 하고 기대하게 되어버린다. 포기하고, 또 포기해도. 몸과 마음이 아무리 추하게 일그러져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봄바람은 언제나 거칠게 불어댄다.
 "벚꽃이 사라져 없어진다면, 봄의 마음은 얼마나 평온하리오."
 비록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해도, 사람은 꽃 없이 살 수 없다. 마음이 소란스러워지면 비로소 마음 있는 곳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폭풍우가 얼마나 부드럽게 마음을 흔들었는지.




<등> 중에서


 이 사람들이 이상하게 날카롭지 않고 포용적이고 당당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카미네 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거부당해도 상처받는 일이 없고,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자넨 연구가 무얼 위해 있는지 아나?"
 "네?"
 "모든 연구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있는 거야.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나는 매일 이 일을 하고 있어. 자네도 자네가 믿는 걸 따르게."




<벚나무의 비밀 색> 중에서


 "기누 할머니는 여기서 벚꽃이 피는 걸 본 적이 없을 거야. 벚나무 염색은 꽃잎이 아니라 꽃이 피기 전 생목을 쓰니까. 꽃잎으로는 천에 색깔이 배지 않아. 매화나무도 벚나무도 퇴색되지 않는 색은 줄기 안에 있어. 감춰둔 건, 강하거든. 살아 있는데도 유령을 만들어 버릴 정도로."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자기 마음을 억누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평생 자신의 유령을 바라보며 사는 건 자기만으로도 족하다고 그랬어."
 "사람들 마음속은 그저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냐. 완벽하지 않아. 갖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돌볼 줄 알아야지. 시작은 거기서부터야."
 자신의 욕망.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울림인가. 부정하려고 하다, 입을 다물었다.
 "유령을 찍을 수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담는 게 아니니까. 그림도 마찬가지 아닌가? 살면서 알게 된 많은 것들에게 보이지 않는 깊이가 있다고 난 생각해. 줄기 안을 흐르는 꽃의 색처럼."
 그루터기 위의 천을 보았다.
 꽃이 지고 나무가 시들어도 색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득 그런 말이 떠올랐다.
 "나 사진작가잖아. 유령은 안 보여도 숨겨둔 건 보이지. 색이란 게 아무리 감추어도 번져 나오는 법이거든."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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