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데나 할펀, '내 생애 최고의 열흘'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내가 죽는다.
가끔 생각해요.
죽는다면.
과연, 내가 죽는다면?
하지만 지금 죽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네요. 거대한 업적을 이루거나 어린 시절의 꿈을 다시 찾는 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요. 삶에서의 소소한 일들이 아직 제겐 가득합니다. 예를 들면, 엄마와 꼭 끌어안거나 친구를 위로하거나 남편과 함께 가정을 잘 꾸려가는 것. 혹은, 깊이 숨겨놓은 비밀 일기를 언젠가 깔끔히 태워버리는 것 같은 거죠.
그러나 죽음은 갑자기 옵니다.
나는 오늘 죽었다. 황당하게도. 솔직히 나는 안 죽을 줄 알았는데.
나는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은 아니었다....(중략)... 하지만 언젠가 내가 세상을 뜰 거라는 생각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숨이 끊어질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한 적 없다. 무슨 말인지 알죠?
알렉스도 그랬죠. 그녀는 장폐색에 걸린 강아지 복숭아를 산책시키다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해요. 방년 29세. 죽기에 좋은 시기, 이른 때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삶을 정리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외출복 그대로였다는 점입니다. 천국의 접수처에 줄을 설 때는 죽을 때 입은 옷 그대로의 모습이거든요.
이승을 빨리 하직한 게 아쉬울 법도 하건만, 알렉스가 맛본 천국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어요. Oh, heaven!! 각종 명품 옷, 구두, 가방부터 고급 차, 먹을거리까지 원하는 모든 게 원하는 장소에 그득해요. 먹어도 먹어도 - 그런 후 바로 자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 살이 찌지 않고요. 원하는 집을 가질 수 있으며, 물론 청소도 필요 없죠.
아, 거기에 멋진 남자까지!! 맙소사!!
하지만 안타까운 건, 천국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요. 뭐, 명색이 천국이니만큼 다른 등급도 나쁘진 않아요. 그래도 이미 최고 등급의 천국에서 천국의 천국 같은 삶을 누리던 알렉스는 이 천국을 꼭 지키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일곱 번째 천국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 생애 최고의 열흘'에 대한 에세이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심사를 통과하는 것이죠.
"알렉스,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건 말이다. 네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느냐 하는 거야. 그들은 네가 안주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거야. 네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었는지를 알고 싶은 거라고."
그리고?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던 알렉스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고요. 지나온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며 아름답고 잔인하고 행복하고 때론 슬펐던 순간들을 회상해요. 그리고 진솔하게 글을 써나갑니다.
그래서?
멋지게 그녀는 일곱 번째 천국 사수에 성공하죠.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그녀의 삶을 가치 있게 해 준 열 번의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으므로.
2, 3년 전 페넬로페에게 그때 왜 나를 위해 아이들과 싸웠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애들이 너를 엄청 미워하더라. 너를 질투하는 게 분명했어. 애들이 널 질투한다면 너한테 뭔가 대단히 멋진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게 페넬로페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미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세상 무엇보다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찰스 키트리지의 아내로 살고 싶지 않은 건 분명했다. 좀 더 성취감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다 이해한다고 말했을 때 내가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찰스를 사랑하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었다. 엄마가 자신의 꿈을 접었다는 사실도. 그게 어떤 꿈이었는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꿈을 접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 인생을 내 방식대로 살아보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지지 선언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아빠가 틀렸다는 걸 보여줘. 너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엄마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네가 그동안 약혼을 유지하고, 또 그걸 스스로 깰 의지가 있다면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을 거야. 넌 해낼 거야. 네 방식대로 말이야. 난 이제 더는 네 걱정 안 한다."
누군가에게,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것이 내가 이날을 생애 최고의 날들 중 하나로 꼽은 이유다.
그 여덟 번째 생애 최고의 날에 내 기분이 어땠냐 하면......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페넬로페, 다른 친구들에게 전화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온갖 축하의 말과 칭찬 세례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건 필요 없었다. 그저 해냈다는 뿌듯함 하나면 충분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해냈다는 자부심.
사실 이 책, 예전에 예전에 읽었는데요. 그냥 페이지를 슥- 슥- 넘기며 읽기에는 나쁘지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청소를 하는데 이것저것 낙서해 놓은 노트를 뒤적이게 됐거든요. 그러다 귀퉁이에 끄적여 놓은 메모가 눈에 띄길래 글로 남겨 봅니다. 사실 책 자체보다는 읽고 나서 떠오른 상념들이 더 마음에 들어서 기억하고 싶었거든요.
뭐, 솔직히 말이죠. 저는 이 천국이 거짓이었으면 좋겠어요. 왜냐고요? 천국이 정말 이렇게 좋다면, 누군들 죽고 싶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천국에 정말 등급이 있다면, 우리는 또다시 더 높은 곳을 욕심내게 될 테니까요. 하긴, 천국 문턱에 발도 못 디디고 무서운 곳에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요.
다행히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을 걱정하기에는 아직 우리, 이렇게 살아있네요. 그리고 저는, 저는 말이죠. 결심했어요. 지금 이 순간, 나의 하루를 내 생의 최고의 날로 살아내자고 말이죠. 마치 내일도, 다음 생도, 천국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얄궂게도 이제 와 돌이켜보니 산다는 건 좋은 것이었다. 대체 난 무얼 증명하려 했던 걸까? 무엇 때문에 내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걸까? 어린아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내가 어느덧 세상 속에서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신해 있었다.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파티가 끝나고 나서야 즐거웠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 말이다. 내겐 좋은 친구들이 있다. 좋은 직업도 있다. 현재의 삶도 마음에 들었다. 왜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삶을 살지 않은 게 아니라 삶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걸 깨달을 여유가 없었던 거라고."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