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이게 뭐 어때서요?

- 키타카와 에미,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중에서

by hearida

"패배자, 패배자. 대체 뭐에 졌다는 거지. 인생의 승패는 남이 결정하는 건가요? 인생은 승패로 나누는 건가요? 그럼 어디부터 승리고 어디부터 패배인데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나는 이 회사에 있어도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만둡니다. 단지 그뿐이에요."


- 키타카와 에미,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중에서



참 질리게

부지런하던 시절이었어요.

정말 질리도록.

이제와 돌이켜보면

왜 그래야 했을까 싶을 만큼.


회사에 도착하면 6시 반.

직장 생활을 하는 내내

동료들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새벽에 만나 대화를 더 많이 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태풍이 불어도

간판이 떨어져 유리가 가득한 거리를 뚫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인터넷도 안 되는 컴퓨터 앞에서

서류를 뒤적이던 날들.


하루 종일 화장실 한 번 제대로 못 가고

점심은 늘 배달.

덕분에 퇴직하던 날 서랍에는

중국집 쿠폰 134개가

정갈하게 고무줄로 묶여 있었네요.


우연한 기회에

전혀 관련 없던 분야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운이 겹치고 겹쳐

자꾸 위로만 올라갔어요.

무섭도록.


나이도 제일 어리고

여직원도 거의 없는 곳에서

묵언 수행하듯 일만 했어요.

두려웠거든요, 잘 몰라서요.

매일 제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죠.


금방 허물어질 듯

모래성 위에

뼈대 하나 없는 성을 짓는 기분이었어요.

작은 바람에도

곧장 무너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웠습니다.


옷도 가방도 구두도 화장도

어울리던 사람들도

모두 반짝반짝 화려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눈이 부셔야 하는데


이상하게 늘 눈이 시려요.

추운 바람이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아

자꾸 춥고 아파요.

모두가 빛나는 그곳에서

저만 혼자 잿빛처럼 보이네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사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회사의 소모품이 되고 싶은가.

소모품을 부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결국 저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어요.

그냥 저는

제가 되었어요.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모두가 회사를 나올 필요는 없어요.

모두가 회사를 다닐 필요도 없지요.

저마다의 이유가 있잖아요.

저마다의 목표도 있고요.

우린 각자 달라요.


저는 회사를 나왔어요.

그게 뭐 어때서요?

제 친구는 회사를 다녀요.

제 남편도 다녀요.

그게 뭐 어때서요?


그냥 서로의 가치에 맞게

때로는 생활의 필요에 따라

우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거기에

승리와 패배는 있지 않아요.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기로 정해진 운명이고

자연의 움직임 앞에서

한없이 작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까요.


6월의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어요.

다들 안녕하신가요?

부디 오늘도 담뿍, 담뿍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항상 감사해요. :)



Bangkok, Thailand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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