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혜영, '홀' 중에서
대학교에 처음 갔던 날이 떠올라요.
2001년 2월의 5일 날.
신입생들 사전 모임이 있었어요.
낯을 워낙 가려요.
많이 폐쇄적인 사람이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스무 살엔 정말 심각했어요.
평소라면 아마 절대 가지 않았을 텐데.
수능이 끝나고 시간이 참 많이 남았거든요.
뭐, 스무 살이니까 조금은 달라지고 싶기도 했고요.
그 해에는 눈이 참 많이도 내렸어요.
월요일이었는데 그날도 폭설이었거든요.
거리 곳곳에 치워진 눈이 담처럼 가득가득 쌓여있었어요.
저 엄청 무시무시할 정도로 길치거든요.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검색을 할 수 있지도 않았고요.
인터넷으로도 길 찾기가 되지 않던 때였어요.
가뜩이나 거리가 먼데 더 돌고 돌아서 엄청 헤매고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겨우 도착한 학교 앞에서 걸음이 멈췄어요.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문 밖과 안이 겨우 한 걸음 차이인데, 다른 세계 같더라고요.
거기 있는 그 시절의 언니 오빠들이 뭐랄까, 빛나 보였어요.
그런데 제가 들어가면 그 빛이 깨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대요.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 전이었거든요.
다들 제가 아직 고등학생인 걸 다 알아챌 것 같은 거예요.
모두 저만 보고 수군거리고 놀려댈 것 같아 두렵기도 했죠.
그래서 그 앞에서 참 오래 서 있었어요.
학교 담장을 따라 몇 바퀴를 돌고 또 돌며 고민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서성였네요.
다시 돌아갈까, 싶더라고요.
그게 제일 편하고 또 쉬운 선택이었어요.
어쩌면 최선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결국, 돌아가지 않았어요.
40분을 주저하다 이 악물고 들어갔어요.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엄청난 속도로 전력질주!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전의 나와 다른,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
생각지도 못했던 삶을 살게 된.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평지를 걷다가도 넘어졌어요.
종종 내릴 곳을 지나쳐 버리기도 했고요.
작은 일 하나에도 잘 웃고 잘 울었습니다.
이십 대의 저는 십 대 때와는 전혀 달랐어요.
신기한 게, 어느 날은 또 그렇게 변한 제가 진짜 저 같더라고요.
이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런데 또 지금은 그 시절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제가 있어요.
이제는 잘 넘어지지도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지도 않아요.
마음도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이것이 나아진 건지는 모르겠어요.
십 대와 이십 대, 그리고 삼십 대의 저.
그중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지난 시간이 모두 실패는 아니겠지요.
지나온 날들이 그저 실패의 축적에 지나지 않는다면 너무 슬플 거예요.
부디 이 삶이 그런 것은 아니기를.
끊임없이 발전하지도 않겠지만, 또 실패만을 거듭하지도 않는 것.
다만 그때그때 우리가 둘 수 있는 최선의 점을 남기는 것.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언젠가 하나로 이어진 선이 되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 싶은 오늘이에요.
그저 조금은 부드럽고 또 아름다운 선이 되기를.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것뿐입니다.
비가 지나간 자리에 무더위가 남았네요.
부디 건강하고 또 담뿍, 담뿍 행복한 오늘 보내시기를.
감사합니다.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