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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Jul 13. 2017

오늘은, 빨래를 해야겠어요

- 뮤지컬 '빨래'를 봤어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

 뮤지컬 '빨래'를 봤어요. 벌써 예전부터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만 했었는데, 어제 엄마와 손을 꼭 잡고 드디어 보고 왔네요.
 보고 나니 아, 왜 12년이나 지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그토록 사랑받았는지 정말 잘 알겠더라고요. 공연 시간이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서 총 160분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내내 쉼 없이 깔깔 웃고 즐기고, 또 멋진 노래와 춤이 가득한 흥겨운 공연에 감동하다, 어느 순간엔가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오랜만에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공연 30분 전에 극장에 도착했는데 학생들이 가득했어요. 알고 보니 여러 중고등학교의 학생들 단체 관람과 겹쳤더라고요. 그래서 4시 공연인데도 좌석이 만석이었어요.

 사실 공연 전에는 학생들이 무례하게 굴거나 시끄럽게 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확실히 공연 전에 엄청 시끌벅적하고 계속 웃고, 에너지가 넘치더라고요. 뭐가 저렇게 웃길까 싶은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저도 언제나 허리가 끊어지게 웃어대곤 했던 것 같아요.

 여하튼! 공연 때도 이렇게 산만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어머 왠 걸요! 전혀! 100%, 200% 기우였어요. 있는 힘껏 손뼉 치고 환호하고 반응해준 멋진 학생들 덕분에 공연이 더 완벽해졌답니다. 배우분들도 즐거워하시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어요. 특히 주인공들의 달달한 장면에서는 너무 열광적인 환호가 이어져서, 제 기분까지 더 고조되더라고요. 진짜 좋았어요.

 그나저나 학생들이라면 대뜸 색안경부터 끼고 보게 되다니! 아, 이젠 정말 꼰대 어른 아주미가 된 건가 싶어 부끄럽네요. 반성에 반성!!!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나이만 차고 많은 게 모자란 사람이지만요. 닫히고 막힌 어른만큼은 제발, 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돌아보니, 지금껏 살면서 제법 많은 콘서트나 뮤지컬, 연극 같은 공연, 그리고 영화와 전시회 등등을 접해왔던 것 같은데요. 그중 98%는 엄마랑 함께였던 것 같아요. 코드가 딱 맞는 짝꿍 엄마가 있어 참 좋은 매일입니다. 음, 물론 엄마가 '빨래' OST CD 사줘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정말입니까?!!!)

 반면에 유유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뮤지컬은 영 못 보겠대요. 말로 하면 될 걸, 왜 느닷없이 노래를 하는지 모르겠다네요. 엄마는 정말 좋은 공연을 보면 마음이 조금 열릴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다음엔 유유랑 한 번 더 보려고요. '빨래'를 보면 뮤지컬을 조금은 더 좋아하게 될 게 분명해요. 그리고 그 핑계로 저도 또 보면, 얼마나 좋게요? 헤헤.






 서울살이 몇 핸가요? 

 저는 35년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천안 살이 7개월 차입니다만. 내려가는 기차의 차창 밖 풍경은 매번 많은 생각과 그리움을 남기네요. 복작거려서 싫던 서울의 거리도 더 아름답게 보여요. 역시 모든 건, 조금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기차역에 내리니 유유가 최근에 다시 꺼내 놓은 스쿠터를 타고 데리러 와줬어요. 유유 총각 때 타던 건데요. 봄여름가을, 동네 마실용으로 타려고 여기저기 고치고 살뜰히 손을 봤어요. 이 참에 스쿠터 면허라도 따야 하나 고민 중인데, 길치에 운동치인 저는 그냥 뒷자리로 만족하라는 유유의 조언을 들어야겠죠? 뭐, 어쨌든 조그만 스쿠터 유유의 커다란 등 뒤에서 빠라바라바라밤바람을 즐기며 무사 귀가했습니다. 하하하! :)






아침에 일어나 '빨래' OST를 틀었어요. 듣고 있자니 어제의 감동이 새삼 더 또렷해집니다. 무대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시 제게 다가오네요.


 "참는 게 지겹지도 않니?"


 강원도에서 올라온 서울살이 5년 차 나영.


"여기 옥탑방은 하늘하고 친해요. 우리도 친하게 지내요."

 

 몽골에서 온 '무지개'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순수한 청년 '솔롱고'


 그리고 정 많은 이웃집 희정엄마와 그의 연인 구씨 아저씨, 이삿짐 아저씨랑 슈퍼 아저씨, 또 나영의 회사 동료들과 사장인 빵도 있고요. 솔롱고의 친구 마이클과 공장장, 솔롱고가 세든 집의 주인아저씨 등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요. 고된 서울살이에 어느새 사라져 버린 꿈, 부당함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힘없이 당해야만 하는 현실, 힘들지만 내치지 못하고 껴안을 수밖에 없는 가족 등 우리 누구나가 겪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죠. 특히 저는 회사 이야기 나올 때 주먹을 엄청 세게 쥐었어요. 자칫하면 예전에 다니던 회사까지 한 걸음에 달려갈 뻔했다니까요. 휴-

 아, 그리고 할매, 할매는 볼 때마다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


"니는 냄시 안 나는 줄 알아? 이놈아, 산 것들은 다 지 냄새 풍기고 사는 거야."

 맞아요, 할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냄새를 풍기고 살아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도무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냄새예요. 꽃처럼 향기롭지도 풀처럼 싱그럽지도 않겠지만, 산 것들의 냄새에는 온기가 있어요. 많은 것이 우리의 코 끝을 막고 더 좋은 향으로 지우려 해도, 살아있는 냄새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그 냄새를 저버리고 외면하지 않았으면 해요.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자, 이제 비도 그치고 볕도 쨍-하니 오늘은 저도 빨래를 해야겠어요. 우리의 매일에 가득한 얼룩도 먼지도 주름도 털어내고, 그렇게 뽀오얀 오늘을 살아내야겠어요.







 참, 제 자리가 맨 앞줄이었는데 공연 중에 배우 분께서 제게 다가오셨어요. 저는 핀 조명을 받았고, 모든 관객들은 숨죽여 저를 바라봤어요. 그분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달라 하셨죠.

 "다음 생엔 꼭 예쁘게 태어나기로."

 하... 그 약속 지킬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네요. 이번 생에 이미 너무 예뻐서 말이죠. 풉!

(드들 웃즈므스즈... 즌즈흐게 듣즈므스즈... 승츠받으쓰...)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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