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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Aug 18. 2017

지난밤, 우리는

가족, 여행이라는 것

 지난밤, 우리는 방파제에 앉아 있었어요.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사실 이미 다들 제법 취해 있었어요. 소라회에 아나고회에 수다까지 더해, 소주를 홀짝홀짝 제법 마셨거든요. 하지만 우리를 가장 취하게 한 건 아마도 서로였을 겁니다.


 큰 빵 하나를 통째로 품에 안아 들고 혼자 먹던 저는 이따금씩 발밑을 스쳐가는 바닷 벌레들에 소스라쳐 일어났고요. 그런 저를 보며 엄마와 아빠와 유유는 웃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모르고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어요.

 옆에서는 건장한 청년들이 농구를 하거나, 그러다 지친 몇은 주저앉아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구슬픈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고요. 멀리서는 몇 커플이 모여 불꽃놀이를 하는 그런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제주의 밤하늘 아래, 그렇게 오래 함께 있었어요.


 엄마 아빠와 여행을 참 많이 했어요. 다 큰 자식이 부모와 함께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낯선 길을 떠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세계 곳곳을 배낭 하나 메고 셋이서 신나게 참 잘도 다녔지요.

 유유와는 또 어떻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없는 시간을 쪼개어 둘이서 제법 많은 곳을 여행했네요. 계획을 세우지 않고 보려고 애쓰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를 눈에 담으며 걸음 닿아지는 대로 움직이고는 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함께 있어요.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나란히 제주를 거닐고 있습니다. 지난밤 우리 사이를 가득 채운 웃음이 마치 제주의 바람처럼 청량하여 그만 한껏 숨을 들이쉬었어요.


 가만히 눈으로 담아봐요. 흩어져 존재하던 나의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나의 눈에 담기는 지금을. 아주 소중하게 감싸 안아 봅니다. 꼬옥 안아 남아 있는 거리를 더 줄이고 줄여봅니다.

 남은 여행의 날들에 더 많은 웃음이, 그리고 더 깊은 사랑이 깃들기를. 참으로 꿈같은 밤에, 우리.





170817, 제주의 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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