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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Aug 30. 2017

그래, 라는 말이 좋은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며칠 전)

헤아: 여보여보야~ 이 원피스 좀 봐봐. 이쁘지??

유유: 응, 예쁘네. 어디 거야?

헤아: 외국 브랜든데 요즘 엄청 인기래. 연예인들도 많이 입나 봐.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인데.

유유: 자기한테 잘 어울리겠다. 사~

헤아: 근데 이거 천 쪼가리 요만한 거에 20만 원이 넘어. 안 사.

유유: ???


(그저께)

헤아: 나 피아노 배울까 봐.

유유: 피아노 칠 줄 알잖아.

헤아: 안 친지 오래되기도 했고, 손도 굳은 것 같고.

유유: 근처에 학원이 있어?

헤아: 응. 매일 1시간씩인데 한 달에 12만 원이래.

유유: 그래? 괜찮네. 매일 가는 거면 기분 전환도 되고. 다녀다녀.

헤아: 어, 생각 좀 해보고.

유유: 그러지 말고 다녀. 매일 가는데 12만 원이면 괜찮잖아.

헤아: 집에서도 혼자 잘 노는데, 뭘. 좀 더 고민해볼래.

유유: ???


(어제)

헤아: 쟈기쟈기야~ 이 가방 완전 이쁘지??

유유: 오, 자기가 들면 딱이겠다.

헤아: 그치? 크기며 디자인이며 나한테 딱인데.

유유: 진짜 자기한테 딱이네. 주말에 사러 갈까?

헤아: 아니. 비싸. 가방 하나에 50만 원이 넘네.

유유: 올해만 들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사자.

헤아: 안 사. 나 가방 많거든?

유유: ???


유유: 여보는 이상해.

헤아: 왜? 뭐가?

유유: 맨날 그러잖아. 사고 싶다고 보여주고,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근데 막상 그러자 하면 싫대.

헤아: 꼭 필요한 건 아니라서 그러지. 나는 집이 일터니까 회사 갈 일도 없고, 외출도 거의 안 하잖아. 근데도 이미 옷장이 꽉 차서 엄마가 뭐 또 사면 머리끄덩이 다 뽑는댔어. 알뜰살뜰히 돈 모으래.

유유: 장모님이 그냥 걱정하셔서 하신 말씀이지. 그리고 그중에 당신 14살 때 입던 옷도 있는 거 다 알거든? 신경 쓰지 말고 사고 싶은 거 사. 괜찮아.

헤아: 아냐아냐.



아냐아냐, 여보.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야. 나는 그저 여보의 그래, 라는 말이 듣고 싶은 거야. 그냥 그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되는 걸. 무언가 사고 싶고 하고 싶고 필요하다는 내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맞춘 후 기꺼이 응답해주는 당신이 보고 싶은 거야. 나, 굳이 당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됐을 거야. 당신도, 꼭 예스라 하지 않고 노라 대답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나와 그 물음에 언제나 선뜻 응해주는 당신이, 나는 그런 우리 둘이 참 예뻐서 그래. 그러니까 있지. 지금처럼 늘 그렇게 그래,라고 대답해줄래?

.

.

.

.

.

그럼 언젠가 내가 진짜 살 거야. 자잘한 거 말고, 큰 놈으로. 왜 그런 거 있잖아, 물방울 다이아나 에르메스 버킨 백 같은 걸로다가. 걱정 마. 나중에 내가 진짜 크게 한 건 할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


8월의 여름, 제주에서 유유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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