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보영, '가슴에 내리는 비' 중에서
제가 반곱슬인데
하필 앞머리가 유독 심해서요.
비 오는 날이면 엄청 꼬불거렸는데
학창 시절에는 정말 얼마나 싫었는지 몰라요.
실핀 수십 개를 꽂아도
고데기로 삼십 분을 펴도 그때뿐,
금방 다시 라면처럼 또르르 말리면
너무 분해서 눈물까지 막 그렁거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질색하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난 뒤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구름도 햇빛도 하늘도 반짝반짝하니
한결 더 깨끗하고 환해진 세상이
눈에 가득 들어왔어요.
그걸 보면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서
다시 빙긋 웃기도 했네요.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는구나,
이건 한참 뒤에야 알았어요.
슬프고 힘든 날은 아무리 싫어도
꾸역꾸역 기어이 찾아오지만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인생은 더 빛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거요.
이렇게 비가 올 때면
빗물을 타고 옛 기억들도 함께 내려요.
그 안에는 떠올리기 싫은 것들,
생각하면 마음 아픈 것들도 가득 있죠.
그럴 때 쏟아지는 그리움을 막아줄
우산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피할 수 없이 맞아야 하는 비가
그래서 또 젖고 마는 마음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또 참을 수 없이 아프기도 하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그 모든 게 다 떠내려 가 있을 테니까요.
한동안은 또
말개진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부디
비 내리는 오늘,
그리움에 젖은 이들이 슬피 우는
그런 날은 아니길.
아무쪼록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