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결국 먼지가 된다 해도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by hearida

"역 구내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모두들 제각각의 옷을 입고, 짐을 끌어안은 채 바쁜 걸음으로 제각각의 목적으로 가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백 년 뒤의 일을 문득 생각한다.

지금부터 백 년 뒤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나를 포함해서) 지상에서 사라져, 먼지나 재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거기 있는 모든 사물이 허무한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려 당장이라도 흩날려 없어질 것처럼 보인다. 나는 두 손을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악착같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고 밖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둔다. 백 년 뒤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다. 현재의 일만 생각하도록 한다. 백 년 뒤의 먼 미래를 생각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백 년 전 오늘을 산 이의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나요.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우리는 백 년보다 더 오래된

과거의 사람들도 알지요.


대단한 사람들 말이에요.

그런데요,


위대한 업적이나

어떠한 사건도 없이


그저 묵묵히

일상의 삶을 쌓았던


평범한 이들은 잘 몰라요.

바로 우리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설령 우리가 알 수 없다 해도


그들의 삶이

가치 없었다 할 수는 없겠죠.


기억되지 못해도

기념할 수 없어도


천 년 전, 백 년 전의 삶들이

성실히 쌓였기에


지금의 우리도

그 위에 한 겹의 삶을 더할 수 있는 것처럼


백 년 후, 천 년 후의 우리가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해도


이 순간 우리의 날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닐 거예요.


백 년 후가 아니라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하루만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래요.


결국

먼지가 되어 흩어지겠지만


나에게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하나의 생이 되기 위하여.


이 봄날

이 순간


모두 부디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



Okinawa, Japan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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