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은실,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중에서
어제는 오랜만에 연남동에 갔어요.
약속이 있었거든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어요.
그런데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잔뜩 흐리던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죠.
예전에는 그렇게 싫던 비가 어제는 참 좋더라고요.
언제부터였을까요, 비가 좋아진 건.
친구를 기다리면서 근처 카페에 앉아
오래도록 비가 내리는 풍경을 바라봤어요.
온 세상이 촉촉하게 물드는 모습을요.
그렇게 찬찬히
빗방울의 여정을 따르는 동안
저의 봄도 깨어났습니다.
비의 몸짓을 눈에 고이 담고
비의 소리를 귀에 깊이 담으니
비는 어여뻐지고 봄은 그 뒤를 따라왔네요.
오늘은 날이 좋아요.
하늘도 맑고 바람도 시원한
그런 좋은 날이에요.
수많은 책임과 의무와 할 일들이
우리 등을 떠밀어
이 하루를 서둘러 지나가게 하지만
그래도 잠시, 아주 잠시만 멈춰서
세상과 눈을 맞출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시선의 끝에 당신의 봄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사랑은 어쩌면 한눈에 빠지는 것이겠지만
또한 사랑은
조금씩 물들어가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주변의 무의미한 것들이
우리의 시선에 물들어
이 삶을 풍성한 사랑으로 채울 수 있기를.
그렇게 봄이 다가와 길게 머물며
우리의 오늘을 따스하게 품어주기를.
부디 담뿍 담뿍 행복하기를.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