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길 위에서, 안녕하기를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by hearida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엄마 아빠가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긴 여행이에요.

한 달이 넘는.


엄마와 아빠와 저,

우리는 많은 곳을 함께 했어요.

매해 일 년 중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여행했어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했지만

여행은 늘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올해는 제가 가기 어려워졌어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결국 두 분이서 떠나게 되었어요.


오래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가야겠다 하시더군요.

지금 떠나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너희 등만 보며 살 것 같다고.


이번엔 함께 가주려나

다음엔 우리를 데리고 떠날까

그런 생각만 하게 될 것 같다고.


그러니

아직 하루라도 젊은 이 날에

엄마 아빠가 한 번 해보겠다고 말이에요.


5월의 끝무렵에 두 분은 그렇게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헬싱키에서 발칸 3국,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그리고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지요.


엄마 아빠의 여행이

부디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보면 늘 눈물짓게 되는

상처 받고 아프고 힘들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국의 거리에서 헤매며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는

오늘의 도전과 설렘이


엄마 아빠의 날들을

한없이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행복한 내일로 이어질 것이라 저는 믿어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

이 하루도 낯선 그 길 위에서

건강하고 또 행복하기를.


그리고

익숙한 자리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저와 당신, 우리 역시


어제와 같은 햇살과

내일도 다름없을 바람에

위로받고 힘을 내어


오늘 발 디디고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그렇게 내일까지

잘 걸으갔으면.


후회에 무너지지 않고

불안에 지치지 말고

부디 안녕하기를.


Lviv, Ukraine by 이여사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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