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허니먼,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나, 엘리너 올리펀트.
곧 서른이 되는 독신 여성으로 임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하는 일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회계팀 직원. 스물한 살 때부터 벌써 9년째 지각이나 결근, 연차 따위 한 번 없이 성실히 근무 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김없이 여덟 시 삼십 분에 출근해 업무를 시작한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에는 홀로 시내 중심가에서 사 온 점심을 먹으며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크로스워드 퍼즐을 한다. 신문은 <데일리 텔레그래프>를 보는데 거기 실린 크로스워드 퍼즐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업무 외에 말을 섞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할 뿐.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채 다섯 시 반까지 근무한 후에는 다시 삼십 분 거리의 집으로 향한다. 저녁에는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보통 파스타와 샐러드로 이루어진 저녁을 먹고 책을 읽는데, 이따금 텔레비전을 보기도 한다. 보통 열 시쯤이면 침대로 가 반시간 동안 책을 읽다가 불을 끈다. 수요일에는 십오 분 정도 엄마와 전화를 나눈다. 집에 있는 유일한 생명체는 식물 폴리로, 나는 종종 폴리와 대화를 나누지만 그게 부끄럽지 않다.
금요일에는 퇴근하고 언제나 마크드스펜서에 들른다. 그리고는 테스코 메트로에 가서 마르게리타 피자와 키안티 와인 한 병, 그리고 글렌스 보드카 두 병을 큰 병으로 산다. 집으로 돌아와 피자를 먹고 와인을 마신 후 보드카 두 병을 천천히 나눠 마시며 주말을 보낸다.
이런 내 삶을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나 엘리너 올리펀트는 괜찮다.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나는 혼자로 충분한 독립체다.
나는 내 인생을 혼자 꾸려나가는 것에 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유일한 생존자다. 나는 엘리너 올리펀트다. 나는 어느 누구도 필요 없다. 내 인생에 큰 구멍은 없고 나라는 특별한 퍼즐에 빠진 조각도 없다. 나는 혼자로 충분한 독립체다. 어쨌거나 스스로에게 늘 그렇게 말한다.
엘리너 올리펀트의 자기소개, 어떠세요? 저는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를 읽기 전에 표지와 제목만 보고는 어느 괴짜 여자의 가벼운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막연히 넘겨짚었어요. 하지만 책장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달았지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모르지만, 엘리너 올리펀트는 그저 그런 괴짜가 아니야. 진짜가 나타났다! 이렇게 말이에요.
엘리너는 9년이나 한 회사를 다니면서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매일 정해진 일과를 보내는, 아주아주 성실한 사람이에요. 엘리너도 말했듯 회사에서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관계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닌데, 스스로는 그 원인을 동료들의 미성숙함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음,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제일 큰 이유는 그녀에게 있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 - 그러나 논리적으로 그녀를 반박하기 어려운 - 을 하는 데다, 그런 그녀가 황당해서 쳐다보기라도 하면 자기가 더 어이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엘리너에게 네가 좀 유별나다고 아무리 눈치를 줘도, 세상에는 매너와 규율에 느슨하고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엘리너를 뭐 어쩌겠어요. 거기다 엘리너는 그런 사회의 일원이 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을 뒤흔들 거대한 일들이 한꺼번에 생기는데요.
하나는 운명의 남자를 만난 거예요.
우연히 가게 된 공연장에서 조니 로몬트라는 밴드 보컬을 보고 엘리너는 한눈에 반해버려요. 그래서 그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 새로 태어나기로 마음먹죠. 그때까지 엘리너는 머리도 자라는 대로 기르고, 옷은 정해진 몇 벌만 입고, 신발과 가방은 늘 기능을 최우선으로 선택했는데요. 아무래도 그가 밴드를 하는 아티스트이다 보니, 약간의 변화는 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생각했지요. 그래서 백화점으로 가 그동안 시도해본 적 없는 스타일의 옷과 구두를 사고, 화장도 해하고요. 미용실도 가고 네일에 심지어 왁싱까지! 그에게 걸맞은 여자가 되기 위해 엘리너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어요.
"얼마나 용감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엘리너?" 로라가 물었다. 적절한 질문이었다. 나는 용감하다. 나는 용감하고, 용기가 있다. 엘리너 올리펀트는.
조니 로몬트로 인해 그녀의 외면이 변했다면 그녀의 내면을 바꾸는 것은 레이먼드입니다.
인생에 예기치 못한 사건은 늘 한꺼번에 오지요. 조니 로몬트에게 푹 빠지게 된 그즈음, 회사에 새로 온 IT 전문가 레이먼드가 의도치 않게 그녀의 일상에 끼어들게 돼요. 크지 않은 키에 운동화와 헐렁한 데님 차림, 불룩 나온 배와 짧은 머리에 숱이 줄은 머리카락. 금색 수염에 맙소사, 흡연까지. 도저히 좋게 볼 수 없는 그와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된 퇴근길, 엘리너는 새미라는 이름의 노인이 쓰러진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레이먼드 때문에 반쯤 강제로 새미를 돕게 돼요.
그날을 시작으로 엘리너는 레이먼드와 새미는 물론, 새미의 가족과 레이먼드의 어머니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지요. 이전까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거나 예방 접종을 할 때 외에는 타인과 접촉이 거의 없던 엘리너는 그들의 손을 잡고 서로 안고 기대며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 온기는 얼굴의 화상처럼 손상되었던 그녀의 심장을 움직여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지요.
레이먼드의 손이 닿았던 자리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저 순간이었지만 거의 눈에 보일 것 같은 따스한 손자국이 남았다. 인간의 손은 다른 사람을 만지기에 정확히 알맞은 무게, 정확히 알맞은 온도를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꽤 여러 번 - 최근에는 좀 더 많이 - 악수를 했지만, 평생 누군가의 손이 내게 이렇게 닿았던 적은 없었다.
"우리는 이제 친구예요, 맞죠?" "맞아요." 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첫 번째 친구! 인정한다. 결국 나는 레이먼드가 컴퓨터 수리기사로는 별로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그의 사회적 습관에도 거슬리는 게 많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친구였다! 친구 하나를 얻는 데 정말로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 대체로 친구가 적어도 한두 명은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친구 만드는 걸 일부러 피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만들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늘 아주 어려웠다. 화재 이후 나는 내 안에 만들어진 공간에 들어맞는 사람을 결코 찾지 못했다. 불평하는 게 아니다. 결국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처음 엘리너를 만났을 때는 그녀의 독특한 행동과 말로 인해 웃음도 나고 어이없기도 했는데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삶 저 아래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드러나고, 그래서 그녀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가늠하면서 마냥 괴짜인 줄만 알았던 그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어요. 언제나 괜찮다고 외치던 엘리너는 전혀 괜찮지 않았던 거였어요. 그녀는 외로웠고, 외로워 죽을 것 같았지만 그 외로움을 입밖에 낼 수도 없었어요. 자신의 삶의 어디가 고장 났는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저 괜찮다, 괜찮다 혼자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를 자주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그러다 문제를 발견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넘기려고만 했으니까요.
나는 다시 깨어났다. 커튼을 쳐두지 않아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달빛. 그 단어에는 낭만적인 느낌이 있다. 나는 한 손을 다른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사람의 손이 내 손을 잡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상상해봤다. 외로움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지루해서 죽을 것 같다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 죽겠다고 말하지만, 내게 외로워서 죽는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내 머리는 숙여지고 어깨는 축 처지고 나는 아픔을 느낀다. 인간과의 접촉을 바라는 신체적인 아픔. 누군가 나를 잡아주지 않으면, 나를 만져주지 않으면 땅바닥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의 이 광적인 상태는 제쳐두고, 다른 사람이 나를 그런 식으로 - 그저 한 인간으로 - 사랑해줄지 모른다는 생각은 포기한 지 오래다. 미용실에서 두피 마사지를 받았을 때나 지난겨울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을 때. 유일한 접촉의 순간들은 내가 돈을 지불한 사람들로부터 경험한 것이었고, 그때 그들은 거의 늘 일회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그저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누군가가 안부를 물으면 잘 지내요, 라고 말해야 한다. 연 이틀간 아무하고도 대화를 하지 않아서 간밤에 울다 잠들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잘 지내요, 가 대답이다.
요즘은 외로움이 새로운 암이다. 수치스럽고 창피한 것이며 모호한 방식으로 사람을 덮친다. 두렵고 치유될 수 없는 것, 너무 끔찍해서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는 것. 사람들은 자신도 고통받을까 봐, 입 밖에 내면 운명의 작용에 의해 자신에게도 비슷한 공포가 닥칠까 봐 두려워서, 누가 그 단어를 말하는 걸 듣는 것조차 원치 않는다.
하지만 레이먼드는 달랐어요. 그는 엘리너가 아무리 엉뚱한 말을 해도 당혹스러운 행동을 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어요. 너는 왜 그러냐고 묻는 대신, 너는 그렇구나 하고 편견 없이 받아들였지요. 그는 항상 웃으며 화상 흉터가 있는 그녀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습진이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상된 그녀의 심장에 자신의 심장을 덧대어 꼭 안아주었어요. 늘 혼자 식사하던 그녀와 점심 약속을 잡고, 문제가 생겼을 땐 그녀의 괜찮다는 말을 무시하고 곧장 그녀에게 달려가기도 하지요. 엘리너는 그런 레이먼드를 통해 비로소 사람들의 온기를 받아들이고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끝내 외면하려 했던 내면의 외로움과 상처를 꺼내어 치유하게 됩니다.
"곧 봐요, 네?" 그가 말했다. "몸조심하고요."
그 두 가지 말 모두 진심 같았다. 정말로 나를 꼭 보리라는 것, 그리고 내가 몸조심하기를 바라는 것. 가슴속이 따뜻해졌다. 추운 날 아침에 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 같은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이었다. "몸조심해요, 레이먼드." 내가 말했고, 진심이었다.
"좀 어때요?" 그가 다시 물었고, 긴장된 목소리였다.
"좋아요, 고마워요." 내가 말했다. 이 말이 정답인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맙소사, 엘리너. 좋다니. 맙소사!" 그가 말했다. "내가 한 시간 안에 갈게요, 알았어요?"
내가 느낀 건 이것이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의 따뜻한 무게. 그의 미소에 녹아 있는 진심. 아침에 해를 보자마자 꽃잎을 펼치는 꽃처럼, 뭔가가 활짝 열리는 부드러운 열기.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 남은 상처 입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저 약간의 애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작은 공간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레이먼드," 내가 말했다. "친구를 갖는다는 게,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진정한 친구, 자신을 아껴주는 친구 말이에요. 당신이 내 삶을 구했어요." 나는 이 카페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우리 둘 다 민망해질까 봐 두려워서 조그맣게 소곤거렸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더 자주 울게 된 지금, 약간의 자극만 있어도 대번에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레이먼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물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면이 좀 있죠. 하지만 좋은 쪽으로요. 당신은 나를 웃게 만들어요, 엘리너. 당신은 바보 같은 것에는 눈길도 안 줘요. 잘 모르지만, 멋있어 보이는 거나, 사람들이 당연히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하는 사무실 정책이나 그런 것에는요. 당신은 그저 자기 일만 해요, 안 그래요?"
우리 곁에도 어쩌면 엘리너 같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엘리너처럼 다소 괴짜로 보이거나, '일반적'이지 않거나 그 모든 이유로 아주 외로운 사람 말이에요. 그럴 때 우린 엘리너가 살면서 자주 봐왔던 이들, 그러니까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 쉽죠. 하지만 사실 레이먼드가 되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잖아요. 그저 함께 밥 한 끼를 먹거나, 진심으로 축하하거나 혹은 걱정하거나, 애정을 담아 그를 꼭 끌어안는 것.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에 외로움의 커튼을 걷어 빛을 쐬어줄 수 있어요.
외롭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못하고 매일 방 한 구석에서 외로움을 삭이는, 그러다 결국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게 된 모든 엘리너에게 저마다의 레이먼드가 꼭 나타나기를 바라며.
이제 엘리너 올리펀트는 진짜 정말 완전 괜찮아.
내 심장에는 얼굴의 흉터만큼이나 두껍고 보기 흉한 흉터가 있다. 나는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손상되지 않은 조직도 조금은 남아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사랑이 들어오고 흘러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작게라도 남아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어떤 사람들, 나약한 사람들은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고립에는 아주 큰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다른 사람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다. 혼자 자신을 돌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력한다 해도 실패한다. 자기 주변의 세상이 붕괴되고 불에 타서 재가 된다. 그렇긴 해도 이따금 나는 필요할 때 찾는 누군가 - 예컨대 사촌이나 형제 - 가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혹은 그저 계획 없는 시간을 같이 보내줄 누군가가.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걱정하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건강해도, 안타깝지만 그 바람은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조차 의미 없다. 내게는 아무도 없으니, 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걸 바랄 자격도 없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사람들 속은...... 알 수 없어요." 나는 단어를 고르면서 약간 멈칫했다. "나도 사람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마음을 여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당신이 정말 누구인지에 대해 한결같이 진실한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무언가인 척하는 것은 잘하지 못했고, 그게 문제였다. 활활 타오르던 그 집에서 일어난 그 일 이후,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 나는 세상에 진실하게 맞서는 것 말고는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했다. 내겐 말 그대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서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나는 사회적 성공은 종종 얼마간 뭔가인 척하는 것에 의거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기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별로 재미있게 느끼지 않는 것에도 웃었고, 특별히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같이 있는 게 특별히 좋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했다. 나는 아니다. 오래전에 나는 그러는 것과 단독 비행을 하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독 비행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안전했다. 사람들은 슬픔이 우리가 사랑에 지불하는 대가라고 말한다. 그 대가는 너무 크다.
레이먼드는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고, 외부 기관에 개입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는 직접 나를 돌보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본 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가 곤란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게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당신을 좋아한다면 - 그리고 나는 레이먼드와 내가 친구가 되기로 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 당신이 슬프거나 화가 났거나 아주 위험한 방식으로 행동하더라도 관계를 유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로써 중요한 사실 하나가 밝혀졌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그런 것일지 궁금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곁에 있어줄 부모, 혹은 여동생이 있다는 것. 그들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아니라 - 맹세코, 이 삶에서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그저,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로, 아무리 상황이 나빠져도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하면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말이다. 나는 대체로 뭔가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꼭 찌르는 아픔을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부러움은 그것을 경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내가 느낀 슬픔과 비교하면 결코 크지 않은 감정이다...... 그것이란 뭘까?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전화기로 전달되는 그 따스함 때문에 나는 그가 진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웃는 표정일 때는 목소리가 달라진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것이 소리를 바꾼다.
나는 끌어안긴 대로, 사실 더 바짝 끌어당겨지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 특정한 시간에 그 특정한 환경에서, 그리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서, 그에게 안겨 있는 느낌이 기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팔이 그의 허리에 감기게, 내 몸이 그의 품에 더 잘 안기게, 겨울 햇살처럼 머뭇거리며 팔을 천천히 조금씩 위로 올렸다. 얼굴을 그의 가슴팍에 갖다 댔다. 레이먼드 또한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는 그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이 이미 주고 있는 바로 그것이며 그 이상도 아닌 딱 그만큼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이거예요. 나는 살아남았다는 것." 내가 그에게 아주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살아남았어요, 레이먼드!" 나는 그것이 행운이기도 하지만 불행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말했고, 그것에 감사했다.
"그럼 안녕, 레이먼드" 내가 말했다. 그가 나를 끌어안고 잠시 그대로 있으면서 내 머리칼 한 올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나는 그의 부피만큼 따뜻함을 느꼈다. 부드러우나 강했다. 헤어질 때 나는 그의 뺨에 키스했다. 까칠하게 자란 그의 수염은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간지러웠다.
"곧 봐요, 엘리너 올리펀트." 그가 말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