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연,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중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입에 담기조차 싫은 말,
'코로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린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이제 갓 17개월이 된 아기가 있는 저희 가족도 집에만 머물며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어요.
저야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인지라
먹을 것과 TV와 책과 음악 등 몇 가지만 충족되면 몇 주라도 힘들이지 않고 집에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제 선택이 아닌 타의로 집에만 머무는 이 상황이 가끔은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기다 논리적 해결과 타협이 전혀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를 돌보고 함께 놀며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니
혼자 뒹굴거리던 예전에 비해 집에서의 피로도가 높기도 하고요.
힘든 시기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매일 일터로 나가야 하는 신랑도
면역력도 없고 항생제도 전혀 듣지 않는 병약한 체력 때문에 걱정이 더 많은 제 친정 엄마도
가게에 손님이 뚝 끊겨 매일 한숨으로 보내시는 아버님도
이렇게 좋은 날 창밖만 바라봐야 하는 아이도
모두에게 너무나 어려운 날들이에요.
어떤 날은 SF나 재난 영화처럼 이제 지구의 미래는 이런 것인가 암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온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빠의 피로와 엄마의 한숨이 쌓이는 이 와중에도
아이는 자꾸만 무럭무럭 자라고 있네요.
길어서 두세 번씩 접어 입던 옷이 어느새 훌쩍 짧아지고
이족보행이 불가능할 것 같던 통통한 발로 이제는 뛰고 점프하고 춤을 추고
할 수 있는 단어도 늘어나 대화가 풍성해지고
취향이 확고해져 단호하게 '아니야'를 연발하다 엄마를 좌절시키기도 하고
모유와 분유와 이유식과 분유식을 넘어 모든 어른식이 가능해졌어요.
이 모든 게 지난 한 달 반 동안의 성장이랍니다.
이 와중에 애가 잘 자라겠나 걱정했는데
이 와중에 또 애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이상하고 못되고 이기적인 사람들도 많지만
또 이 와중에
자신을 희생하고 온기를 나누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잘 알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 와중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좌절하기도 하지만
또 이 와중에
힘내어 무언가를 해내는 이들을 보며 용기를 얻습니다.
눈 오던 겨울 넘어 봄이 온 것처럼
그렇게 이 고비를 넘어 다시 일상을 찾는 날이 오겠지요.
그 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힘들고 지쳐 무너지는 와중에도
기쁘고 좋은 일들이 새싹처럼 힘차게 돋아나
누구도 무너지지 않을 힘을 주기를.
항상 감사합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