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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Croatia_Prologue

by hearida

사람들이 크로아티아를 잘 알기 전부터 나는 그곳에 가는 꿈을 꿨다.


여행을 한다면 꼭 크로아티아를 가야지.


그 어떤 곳도 크로아티아를 보기 전에는 의미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곳이 세상의 출발점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시작.

나의 사전에 크로아티아는 그렇게 쓰였다.





엄마는 토요일 아침이면 언제나 KBS1에서 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틀어놓았다.

그러면 난 늦잠을 자고 부스스한 머리로 시리얼을 담은 그릇에 우유를 부어 거실로 나왔다.

엄마와 아빠와 나는 나란히 앉아 TV를 보았다.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이 삭막한 거실과 그 밖으로 펼쳐진 전쟁터 같은 서울 땅 너머에도, 다른 풍경과 새로운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끔 하루가 너무 길고 지치는 날엔 그 사실이 위로가 됐다.

여기가 끝이면 너무 슬플 테니까.

도망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됐다.




어느 토요일, 나는 숙취에 속이 쓰려 잠이 깼다.

전날 대학 친구들과 거하게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다.

회사를 다니던 친구는 가게를 차렸는데 벌이가 꽤 좋다며 가게 명함을 건넸다.

지난번 홍대에서 만났을 때 남자 친구와 헤어져 눈에 핏줄이 터지도록 울던 친구는 1년 만에 발그레한 얼굴로 청첩장을 내밀었다.

예전부터 똑 부러지던 친구는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공부해 국가고시에 합격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 돌잔치를 앞둔 친구는 아이가 제법 말이 늘었다며 핸드폰 속 아이의 얼굴을 쉼 없이 넘겨 보여주었다.


그 틈에서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크게 웃고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친구들을 축하했다.

2012년, 그때 나는 고작 서른하나였다.

어떤 감정이 자꾸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올랐다.

나는 그게 질투인지 서러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체를 감춘 그것이 목까지 차오를 때마다, 그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술을 넘겼다.

아무것도 내밀 것이 없는 나는 그저 술로 텅 빈 속을 채울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잔뜩 취해버렸다.


쓰린 속을 쓰다듬으며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작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엄마는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쏟아내었다.

나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곧 소파에 쓰러지듯 엎어져 머리맡에 놓여 있던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때마침 그 여행 프로그램이 익숙한 음악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알코올이 증발되고 퀭해진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다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곧이어 엄마도 내 곁으로 바짝 몸을 붙여 앉아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TV에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이 온통 빨간 지붕으로 뒤덮이고 그 너머로 깊고 투명한 파란 바다가 펼쳐진 곳.

거리 위의 대리석은 오랜 시간 제 자리를 지키며 부드럽게 반들거리고 있었고,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라고 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또박또박 '두브로브니크' 여섯 글자를 쳤다.

방금 TV에서 본 풍경이 정지된 사진이 되어 모니터에 떴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했다.

작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말을 남겼단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누구보다 진정한 낙원을 바라고 있었다.




찾았다.


나는 이제야 찾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도망을 간다면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이왕 떠날 거라면 그리하여 언젠가 세상의 모든 곳을 돌아볼 결심이 든다면.

그럼 가장 먼저 세상 가장 아름다운 곳,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부터 가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진짜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일상을 멈출 용기도, 통장을 털어 비행기 티켓을 살 배짱도 없었다.

나는 그저 당시 그곳을 다녀온 여행자들이 적은 몇 권 안 되는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읽을수록 갈증이 났다.

풍경을 출력해 다이어리와 책상 앞 벽에 붙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영원한 언젠가를 그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하지만 결국 나는 떠났다.

나의 낙원 크로아티아로.

엄마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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