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 길

오, 나의 네팔!

열여섯, 끝의 시작.

by hearida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과 사진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새벽 다섯 시.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눈이 떠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소리의 근원을 더듬어본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낮고 기괴하면서 웅장한 소리다. 구우웅- 우어- 우어- 하는데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것 같다. 곧 선영이도 일어나 앉는다. 둘이 숨 죽이고 앉아 있다가 결국 엄마 아빠 방으로 향한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벌써 엄마도 깨어 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단잠에 빠져있는 아빠를 흔들어 깨운다. 세 여자의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밖에 나가 확인하고 돌아온 아빠가 내민 답은... 비둘기들이 구애하는 소리... 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그냥 비둘기들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비둘기떼! 허! 살면서 그런 건 처음 들었네, 아이고. 심지어 누워있던 개들이 화음까지 넣으니 잠이 확 깬다.


선영이가 아침 산책을 나간 사이 나는 방에 가만히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신선놀음을 한다. 비둘기떼의 합창은 뜨는 해와 함께 잠잠해지고 지금은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와 말소리, 자전거 소리, 새들의 날개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이어폰을 빼고 잠시 창밖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이 분주하게 아침을 맞이하며 내는 음들이 귀를 스치고 사라져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이렇게 '잘' 살아있고, 그리하여 '또다시' 이 아침을 맞이했다는 생생한 느낌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전해진다. 감사하다, 이토록 눈부신 내 아침과 내 삶의 모든 것.


전날 사놓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여덟 시쯤 덜발 광장으로 출발한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거리,라고 하기엔 솔직히 길이 조금 더럽고 시끄럽고 번잡하여 걷기 힘들었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눈에 보이게 거리를 덮은 매연과 길 가에 늘어선 노점과 여기저기 울려대는 차 경적소리. 걷는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사이 덜발 광장에 도착한다. 솔직히 덜발이라는 말이 더 입에 착착 붙어 쓰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이 원어에 가까운 제대로 된 표현이다. 카트만두의 건축물 대부분이 모여 있는 이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12세기에 건설을 시작하여 17세기 말라 왕조 시대의 왕궁을 포함, 역사 깊은 사원이나 탑, 조각상 등 볼거리가 꽤 많은 카트만두의 중심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새똥으로 뒤덮여버린 지붕이나 한쪽으로 기울어 곧 허물어질 것 같은 목조 외관 등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나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광장을 힘차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웃음이 난다. 오래된 유물을 배경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렇게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다시 미래로 나아갈 것이란 생각을 하다가, 그만 혼자 웃고 만다. 가끔 엉뚱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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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둘러보다, 한국 방송에서도 본 적이 있는 쿠마리 사원으로 들어간다. 처녀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카우마리아(Kaumarya)'에서 파생되었다는 쿠마리는, 네팔어로는 '결혼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힌두교 두르가(Durga)의 살아 있는 화신으로 숭배되며, 네팔인들에게는 평화의 상징이자 축복과 마음의 평화를 주는 여신이며 예언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매년 9월에 행해지는 축제에서는 국왕마저 무릎을 꿇을 정도라 하니 그 권위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간다. 따라서 쿠마리로 뽑히는 것은 그 가문과 부모에게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연유로 당연히 선발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우선 쿠마리는 명문가인 샤캬(Shakay, 석가모니의 후예)족의 어린 소녀 중에 선발되는데 소라고둥과 같은 목, 새카만 머리카락, 반점이 없는 몸에 빠진 것 없이 가지런한 이빨까지 신체적 조건만도 무려 32가지에 달한다. 까다로운 자격 심사를 통과한 후에도 영적인 능력의 시험 등 수많은 검증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쿠마리로 선발되는 것이다.


하지만 쿠마리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우선 쿠마리가 되면 가족과 떨어져 사원으로 거취를 옮기게 되는데, 머리는 틀어 올린 채 붉은 옷을 입고 붉은 화장을 하며 이마에는 붉게 불의 눈을 그려 넣는다. 외부 출입은 종교적인 행사와 9월의 축제 등 일 년에 몇 번으로 국한되며, 그 외에는 내내 사원에서만 지내야 한다. 원래는 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몇 년 전부터 어린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인정되어 학교를 다니거나 개인 교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생활은 초경이나 그 외의 상처로 피를 흘린 경우 부정을 탔다 하여 쿠마리를 그만두는 날까지 계속되는데, 그 이후에는 매달 지원금이 지급된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와 잘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성장 기간 동안 단절된 생활을 한 탓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더구나 쿠마리와 결혼하면 남자가 일찍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결혼마저 쉽지 않다.


찬찬히 쿠마리 사원을 살펴본다. 긴 시간을 버텨온 나무 기둥과 정교하게 조각된 창틀이 아름답다. 아마 오늘도 저곳 어딘가에는 쿠마리가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따스한 태양이 지면 위로 가만히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쿠마리 사원에는 그 빛이 닿지 않는 듯 마음이 시린 것은 기분 탓일까. 이토록 부족한, 그저 한낱 여행자에 불과한 내가 감히 한 나라가 오래도록 이어온 풍습을 함부로 판단하여 멋대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다만, 이 지붕 아래를 스쳐가거나 머물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쿠마리라는 이름의 작은 소녀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아무쪼록 지금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이 부드러운 햇살이 저 사원 구석구석까지 포근히 감싸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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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발 광장을 둘러본 후 우리는 스노우맨으로 향했다. 스노우맨은 우리가 포카라의 독일빵집만큼이나 기대하는 곳으로 이름부터 달콤한 크림 캐러멜이 있는 곳이다. 한참을 돌고 돌아 겨우 목적지에 도착! 진열장에 곱게 놓인 크림 캐러멜과 침샘을 자극하는 볼케이노 초코케이를 시킨다. 먹기 전, 두근두근 - 먹으며, 두근두근- 먹고 나서, 두근두근- 이거 추천한 놈을 향한 내 마음은 두근두근- 널 꼭 찾을 거야, 그리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두근두근- 하, 뭐 이러냐고. 유독 우리가 참고했던 블로거들만 미각이 손상된 것인가! 정말 맛이 없었다. 진짜 설탕 뿌린 두부를 먹지, 이건 아니다. 너무해요, 진짜!!! 낸 돈과 여기까지 온 걸음이 아까워 억지로 입에 쑤셔 넣는데 속상해서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목도 축일 겸 카트만두 게스트 하우스 근처 카페에서 티 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스노우맨에서의 실패를 만회하려 믹스드 프룻 위드 요구르트를 시킨다. 설마, 과일하고 요구르트의 조합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던 나의 믿음을 깨다니! 통조림 과일은 그렇다 쳐도 요구르트 색깔이 술 먹고 게워낸 커스터드 크림 같을 필요는 없지 않소? 이번에도 요구르트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지긋이 어금니를 깨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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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만큼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 어제저녁에 먹은 모모스타로 갔다. 치킨 쵸메인과 치킨 뚝바에 치킨 스파이시 모모와 프라이드 칩 칠리, 프렌치 어니언 수프를 시킨다. 메뉴만 보면 네팔 닭의 씨를 말리려는 줄 알겠네. 커커. 다행히 이번엔 다 맛있다. 매운 걸 좋아하는 나는 쵸메인에 잘게 썬 고추를 있는 대로 넣고 먹으면서 땀구멍과 콧구멍을 통해 어마어마한 양의 체내 수분을 방류한다. 그런데 바로 뒷좌석의 외국 남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먹는 내내 나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그 시선을 오롯이 받으며, 그러거나 말거나 젓가락질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거뜬히 한 그릇을 비우고 만다.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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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코를 훌쩍이며 식당에서 나와 50불을 환전한다. 다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숙소로 들어와 한가로이 책을 읽는다. 그 사이 아빠는 만류하는 엄마와 나와 선영이를 뒤로 하고 기어이 이 곳 미용실을 경험해 보신다며 밖으로 나가신다. 잠시 후, 돌아오신 아빠의 헤어 스타일은... 세 여자가 30분 동안 끅끅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도로만 해두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볼이 찢어지게 아플 만큼 웃음이 난다. 푸하하.


거리 구경 조금 하니 어느새 저녁이다. 움직인 건 별로 없는데 내 배는 서글프게 꼬르륵꼬르륵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Chicken Fraffe라는 치킨랩이 유명한 가게가 있어서 가보기로 한다. 벌써 줄이 길게 서 있다. 하지만 그간의 실패로 인해 우리는 큰 기대 없이 도전하는 마음으로 치킨랩과 프라이드 칩을 시킨다. 주문하는데 알바 총각이 잘생겼다.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싱긋 웃는데 흐뭇하다. 아직 먹기 전이지만 별 하나는 일단 주고 시작! 히히. 조금 기다리니 음식이 나온다. 갓 만든 치킨랩은 두툼하고, 감자칩도 노릇노릇 양도 많다. 한입 베어 무는데 어라! 이건 감동이다. 진짜 진심으로 맛있다. 카트만두에 왔다면 정말 이건 한번, 아니 두 번 세 번 먹어도 모자랄 만큼 맛있다. 심지어 가격도 양도 착하다. 오예!!! 너무 열심히 먹다 혀까지 깨물었지만 그까짓 거, 할 만큼 만족스러운 맛이다. 엄지 척, 양손 엄지 척, 그것도 모자라 양 발 엄지까지 척척 올려본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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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거리를 산책 삼아 걷다 숙소로 돌아온다. 쪼리 신은 채로 여기저기 종횡무진한 탓에 피로가 쏟아진다. 빨리 정리하고 자고 싶은데 하필 정전이라니. 기다리고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손전등을 비춰가며 겨우 짐을 챙긴다. 그래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결국에는 헤드랜턴을 끼고 샤워를 한다. 오, 정말 이번 여행은 새로운 경험이 가득하구나. 그런데 잠을 자는 내내 배탈이 났는지 아파서 새벽 두 시 반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쵸메인에 넣은 고추가 너무 많아 위가 탈이 난 듯하다. 돌아가는 날인데 컨디션이 제로다. 시작도 못한 긴 비행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공항으로 출발한다. 몸도 안 좋은데 수속은 길고, 특히 여자들은 몸 검사만 세 번 정도 하는 탓에 기분이 썩 별로다. 지루한 대기 시간을 거쳐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엄마 아빠를 따라 선영이가 위스키에 도전한다. 속만 멀쩡했어도 나도 한 모금했을 텐데, 물끄러미 위스키 잔만 바라보다 맹물만 마시고 만다. 그래도 다행히 조금씩 회복을 해 가는 것 같다. 긴 비행을 마치고 처음 올 때 거쳐간 태국 공항에 내린다. 공항을 조금 둘러보다 네 명이 옹기종기 소파에 모여 앉았다. 엄마와 아빠, 선영이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우리가 함께 보낸 네팔에서의 시간이 벌써 추억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시 또 끝도 없는 안나푸르나의 돌계단을 올라야 할 것만 같은... 거라면 거절해야겠지. 음.


서울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에 오른다. 잠시 눈을 붙였나 싶었는데 어느새 새벽 6시 반, 드디어 비행이 끝났다. 분주하게 오가는 인천 공항 한 가운데 쪼리를 신고 네팔 티와 네팔 바지, 네팔 머리띠까지 찬 우리의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하필 이런 날에 바람은 또 왜 이리 찬 건지. 부산스레 가방에서 잠바를 꺼내 걸치니 가관이다. 그 차림으로 집까지 앞으로 앞으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웃기게 마무리! 이렇게 우리의 우당탕쿵탕 네팔 여행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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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한 사람이다. 함께 하는 이들을 통해 전혀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느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순간들을 공유하는 일은 언제나 내게 특별하기만 하다.

사실 네팔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그리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었다. 누구든 내가 네팔을 간다고 하면 일단 웃어버리곤 했으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친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가깝기만 한 동생 선영이와 함께 떠난 네팔은 그들로 인해 내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진한 매력을 가진 나라로 각인되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푸르른 초원과 하얀 눈이 덮인 마챠푸차레의 고봉,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가 공존하는 그곳을 아마 평생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을 수행하듯 오르며 삶을 고민하는 일도, 조용한 도시의 작은 카페에서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음미하는 법도 나는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벌써 네팔에서의 시간도 저 멀리 사라져간다. 그 날들이 꿈인 듯 다시 서울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있지만, 여전히 네팔은 내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기로 기억되는 이름이다.


(뒤이어 크로아티아-터키 여행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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