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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오, 나의 네팔!

열다섯. 카트만두 입성!

by hearida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과 사진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5시에 일어 준비를 마치고 간단하게 바나나로 아침식사를 마친다. 그리고 엄마와 내 회심의 한방, 슈퍼 울트라 멀미약을 꺼내 선영이와 나눠 먹는다. 지난 번 미국 여행 때 멀미로 고생하다 우연히 구입한건데, 1톤짜리 코끼리도 쓰러뜨릴만큼 초강력이다. 이거면 7시간의 버스 여행 따위 걱정 없다. 멀미, 비켜!


6시 45분이 되어 리비 아저씨가 오신다. 엄마 아빠와 오후에 카트만두에서 다시 보기로 하고 선영이와 택시에 오른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마치 랠리를 하듯 다양한 회사의 버스들이 모여든다. 택시에서 내리자 정류장 안은 빵같은 먹을 거리를 파는 사람들과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선영이와 내가 우리가 탈 버스를 찾아 헤매는데 누가 뒤에서 툭툭 친다. 뒤돌아보니 어제 우리가 버스 회사까지 안내해 준 아가씨다. 고맙다며 건네는 시나몬롤을 받아들고 인사를 나눈 뒤 우리도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많이 낡아 있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고, 곳곳에가 낀 데다 좌석 간 거리도 몹시 비좁았다. 그나마 우리는 맨 앞자리여서 조금 여유가 있는 편다. 조금 더운 듯 하여 버스 천정에 자그맣게 붙어있는 선풍기를 올려다보다 그만 식겁하고 만다. 구석기 시대의 화석에 비견할만한 두께의 먼지들이 선풍기 날개에, 커버에, 본체에 뭔가 찐득한 빛을 발하며 얹혀 있다. 선영이와 눈을 한번 마주치고 올렸던 손을 조용히 내린다. 그냥 가만히 있는게 건강에 좋을 것 같다. 허허.


7시 반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라 덜컹거림이 예사롭지 않다. 급히 손으로 안전벨트를 찾는다. 어... 없다. 제길. 어떻게 손잡이라도 꼭 잡아본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삶에의 강한 열망이 나를 감싼다. 운전 기사 아저씨가 속도를 내신다. 사, 살려주세요. 하지만 두려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초강력 멀미약이 효과를 발했기 때문이다. 선영이와 나는 죽은 듯이 자고, 또 자고, 또 잤다. 중간에 선영이가 깨서 창 밖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날 보더니 푸흡- 웃고 내 사진을 찍은 후에 또 잔다. 나도 깨서 선영이를 보 피식- 웃은 후에 사진을 찍고 또 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인생에 암흑과도 같은 흑역사를 만들어 준다.


도중에 한 번 휴게소에 서서 식사를 하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입맛이 없어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였다. 뭐, 조금 느끼하긴 해도 맛은 좋았다. 그리고 다시 버스에 올라서, 어떡하긴! 또 잤다. 개기름이 땀과 함께 줄줄 흘러도 잤다. 그냥 잤다. 덜컹 거려도 잤다. 시끄러워도 자고 계속 잤다. 도중에 잠시 눈을 떠서 강도 보고 산도 보고 논도 본 것 같기도 한데... 뭐, 어쨌든 그렇게보낸 7시간의 버스 여행의 소회는... 탈.만.하.다. 랄까? 사실 계속 잠만 자느라 아무 것도 기억에 없다.


정확히 7시간을 달린 끝에 오후 2시 반이 되어서야 카트만두에착한다. 포카라와 달리 도로도 정비되지 않은데다 곳곳이 무너지고 휑한 거리를 걷고 있으니 조금 무섭다. 거기에 바람이 불자 흙먼지가 일어나 숨쉬기도 힘들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길을 질서없이 오가는 차와 오토바이는 쉴새없이 경적을 울리며 나의 혼을 빼놓는다. 내리자마자 벌써 포카라가 그리워진다.



하지만 이미 카트만두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보았던 용감한 선영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서 씩씩하게 걷는다. 아, 이런! 이 와중에 하필 배가 고파온다. 꼬르륵 꼬르륵 내 뱃속에 든 거지자식이 달팽이관을 미친듯이 쳐댄다. 조심스레 선영이에게 배고파 하고 속삭여본다. 듣지 못한다. 이번엔 조금 크게 배고파, 라고 외쳐본다. 여전히 듣지 못한다. 그렇게 다섯번을 외칠 동안 선영이는 한번도 되돌아보지 않는다. 너 듣고도 모른척 하는거... 아니지?? 결국 주린 배를 부여잡고 한참을 걸어 와이파이가 터지는 카페로 들어간다.


카페에 앉자 이미 뱃속 거지놈이 혼절하여 식욕을 잃은 후였다. 나는 선영이에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다섯 번의 애탄 외침이 있었노라 고백한다. 선영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전혀 몰랐다고 사과해준다. 아니야, 언니가 더 미안해. 철없는 언니라 미안. 흑흑.


아이스커피를 마시 인터넷으로 숙소를 찾아본다. 마땅한게 없어 발로 뛰기로 하고 힘을 내 일어선다. 여기저기 들어가 가격을 묻는데 예산보다 높은 가격에 조금 당황되기 시작한다. 본 에는 임페리얼 호텔이 제일 괜찮았는데 방 하나에 660루피라니, 깔끔하게 포기다. 당연한 얘기지만 깨끗하면 수록 값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점점 지쳐갔지만 초코빵을 먹고 기운을 충전하여 조금 더 힘을 내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거의 1,000루피에서 700루피 정도 부른다. 그냥 더 주더라도 늦기 전에 방을 잡아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450루피짜리 방이 기적처럼 나타났다. 겉보기는 조금 허름했지만 안은 제법 깔끔하고 넓었다. 와이파이도 빵빵 터지고 교통도 편한 곳이니 더 바랄게 없지. 혼자서는 화장실 문을 열 수 없다는 것만 빼고. 하하하.


숙소에서 먼저 샤워하고 약속한 장소로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간다. 다 와갈때쯔음 저 멀 총천연색 머리띠에 선글라스 끼고 햇빛 차단 팔토시까지 한 엄마 아빠가 보인다. 두분의 모습에 흠칫, 당황하여 선영이와 나의 스텝이 꼬인다. 엄마 아빠는 우리를 못 만나고 계속 여기 있면 어떡하나 무서우셨다는데, 지금 누구보다 이 카트만두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걸 정작 두 분만 모르는 듯 하다.


저녁은 모모스타에서 먹기로 했다. 모모랑 덴뚝, 쵸메인 블랙티를 시킨다. 그즈음 유경험자인 선영이를 제외하고 엄마 아빠와 나는 카트만두 거리의 복잡함과 더러움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예상은 했지만 더 심하다고 입을 모으며 카트만두의 첫인상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뜻언뜻 마주치는 사람들의 맑은 눈빛이나 해사한 미소를 보니, 어쩌면 그들보다 조금 선진화 된 나라에 산다며 으시대는 우리네 삶이 더 팍팍한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포카라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카트만두에 와서 조차, 서울에선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편하고 느긋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물론 어쩌면 이것은 여행이 잠시 건넨 찰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디 이토록 깊고 차분하게 흘러가야 할 삶이라는 시계의 초침을, 나는 세상의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빨리 돌리며 지낸 것은 아닐지. 완벽히 들어서버린 나의 삼십대를 앞으로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많아진다.


식사를 마치고 8시부터 세일을 시작하는 빵집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거리로 초코빵과 시나몬 롤, 치즈케이크, 브라우니, 그리고 초코롤을 사서 신나게 빵 봉지를 흔들며 숙소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는데 코를 크게 흥- 하고 푸니 헉! 코에서 검은 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어머나, 세상에. 나의 코털아, 부디 나쁜 먼지들로부터 나를보호해주렴. 카트만두도 잘 부탁해!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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