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atia_DubrovnikⅣ
어느덧 해가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하늘에 느슨히 기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색이 옅게 옅게 넓은 세상을 덮어갔다.
그 색을 따라 우리는 플라차 거리로 들어섰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저마다 기쁨에 취해 있었다.
행복하다.
요정이 내게도 마법의 가루를 한 줌 뿌려주고 간 모양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시계를 멈춰 이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곁에 선 엄마 아빠를 바라보니 요정이 다녀간 것은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입을 반쯤 벌리고 거리를 둘러보는 엄마 아빠의 시계도 지금은 잠시 멈춰 있었다.
나이도 잊고 근심도 잊고 삶의 목표나 할 일도 이 순간만큼은 우리에게서 아주 먼 곳으로 사라졌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바다에 다다랐다.
아드리아의 푸른 바다는 너무 맑아 제 깊은 속까지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바람이 불었다.
습기를 머금은 비릿함 대신 푸르른 청량함이 담긴 시원한 바람이었다.
길게 늘어선 방파제에는 사람들이 앉아 오늘의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끝에 빠알간 등대가 조용히 사람들을 반겨주었다.
우리도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며 열심히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 뒤에서 고양이는 재촉도 하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
남자의 볼일이 끝나면 고양이는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갈 곳.
이제 막 떠나온 내게는 아직 없는 것.
돌아갈 곳이 생기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겠다, 그런 다짐을 좀 더 멋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돌아갈 마음이 간절해지기 전까지는 이 여행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는 어떨까.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온 곳에 함께 있어 좋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누구도 남겨두고 오지 않아 다행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아직은 괜찮아.
밤바람이 조금 선선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생각해보니 오랜 비행 후에 쉬지도 않고 밖을 돌아다녔다.
잊고 있던 피로가 한순간에 몰려왔다.
앞서 가던 아빠가 등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 뒤를 엄마가, 그리고 내가 따랐다.
그리고 천천히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바람을 빌려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귀에 속삭였다.
오늘, 너의 밤은 편안할 거야.
나는 깊은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랜만에.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