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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텅 빈 마음에 남아 있던 것

Croatia_DubrovnikⅢ

by hearida

벌써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구석구석 뻗어있는 작은 골목들부터 둘러보았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두껍지만 메마르지 않은 담과 돌길이 펼쳐졌다.



어릴 적 살던 동네 골목이 떠올랐다.


내가 뛰놀던 골목은 이 곳보다 훨씬 좁고 작은 세계였다.

하지만 내게는 전부였던 곳.

여름이면 돗자리를 피고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봤다.

비가 오면 집 안의 화분들을 모두 마당에 내어두고 꽃들의 흠뻑 마른 목을 적셔주었다.

친구들과 괜스레 달음박질을 하거나 별 것 아닌 일로 담벼락에 기대어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멀고 먼 두브로브니크의 낯선 골목에서 나는 그 시절을 생각했다.

그러자 갑자기 마음에 톡, 하고 작은 틈이 벌어졌다.


그립다.


나는 그 사이에 있는 것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은 왜 늘 이토록 마음을 아리게 하는 걸까?


저 멀리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걸음이었다.

소리는 나를 스치고 다시 사라졌다.



웃었다.

이상하게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되려 곁에 없는 것들이 이렇게 제 마음속에 남아있다는 게 기뻤다.

아직 내게는 그리워할 것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텅 빈 줄만 알았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틈 안에 숨어 있다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 것.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추억이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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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ida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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