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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

Croatia_DubrovnikⅡ

by hearida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숙소로 향하는 길.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이 눈 앞에 현실로 펼쳐졌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쉼 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느라 발밑을 살피지 못해 몇 번쯤 넘어질뻔하는 동안,

나는 내가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이 온통 낯설었기에.


낯선 하늘.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공기.

낯선 설렘.


그리고 낯선 엄마와 아빠.


그렇게 웃는 엄마 아빠를 처음 보았다.

보이는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듯 끝없이 탐색하고 설레어하는.

나는 왜 이제야 이 표정을 본 걸까.

이렇게나 어린아이를 닮은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엄마 아빠의 얼굴과 온몸에서 마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사실 빛나는 것은 두 사람뿐만은 아니었다.

거리의 모든 것이 반짝거렸다.

어떤 빛은 자신이 비추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아 두렵지만, 이곳은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비추어 함께 빛내주고 있었다.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깊은 곳에 자리한 좁은 골목 2층.

창으로 햇살이 내리쬐고 밖에는 아담한 발코니에 하얀 테이블이 놓인 아름다운 곳.

한 달을 고생하며 찾은 우리의 방이었다.


간단히 설명을 하고 방을 나서려던 주인아저씨가 문 앞에서 몸을 돌려 물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느냐고.

나는 말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냐고.

아저씨는 완벽한 대답이라며 웃었다.

그리고는 더 늦기 전에 바닷가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오늘은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바다에 내려앉는 노을만 보고 오라고.

그러면 긴 여행의 피로가 가실 거라고.

감사하다는 인사에 쑥스러운 듯 손을 한 번 흔들고 그는 문을 나섰다.



잠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약 서른세 시간 만에 온몸을 제대로 누이니 온몸의 피가 멈췄다 다시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짐 정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더 늦기 전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사시사철 지붕이 붉다는 이 곳.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로 어디선가 붉은빛이 내려와 나를 감싸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안아주듯 포근했다.

가능하다면 이 붉은 지붕 아래 둥지 하나를 틀고 계속 머무르면 좋겠다 싶었다.

머무는 동안 정말 이 도시에서 흔히 만나는 누군가가 되어 있기를 바랐다.


앞으로의 한 달은 어떻게 흘러갈까.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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