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내일 죽는다면 널 이해하지 않을거야

정유정X지승호,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중에서

by hearida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고, 원하는 것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시간. 내 시간 속에서 온전히 나로 사는 시간."


- 정유정 X 지승호,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중에서



며칠 전 회사 문제로 고민하던 절친과 통화를 했어요.

친구는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는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했어요.

글쎄,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

그 말에 '그래, 그렇지' 하고 맞장구치려다 다시 생각해보니 저는 전혀 공감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곧바로 반박했어요.

야, 내일 죽는데 이해를 왜 해? 내일 내가 죽어봐라, 이것들을 그냥!!!

그 말에 목소리가 내내 잠겨있던 친구가 그제야 '그래, 네 말이 맞다'며 크게 웃더군요.


한때는 저도 힘들 게 하는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한 적이 있어요.

상대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저런 결정을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묻고 상대를 살폈어요.

그 '왜'를 알지 못하는 한 영영 이해를 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깨달았어요.

'왜'의 이유를 찾는다 해도 결국 전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날 기분이 안 좋아서, 그냥 내가 싫어서, 자라온 환경 때문에...

이유는 많겠지요.

하지만 그 이유가 뭐든 제가 꼭 이해를 해야 할까요.

상대의 무심한 말과 무례한 행동에 이미 받아버린 상처가 이렇게 크고 선명한데 그 이유까지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요.

반성과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에게 이해와 용서가 먼저 주어지는 건 과분하잖아요.


물론 상대가 힘들 게 한다고 매번 다툴 수야 없으니 참기도 많이 하죠.

친구끼리 불편한 게 싫어서.

회사에서 괜히 곤란한 상황 만들기 싫어서.

어른한테 대드는 건 좀 그러니까.

내가 참으면 모든 게 아무 일 없듯 평온하게 흘러가니까.


친구도 그래서일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상황에 힘들어하다 결국, 까짓 거 내일 죽는다면 이해 못 할 게 뭐가 있냐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래도 저는 이왕 내일 죽는다고 생각할 거면 있는 힘껏 분노하고 응징하고 부셔버리겠다 마음먹고 싶어요.

어차피 생각뿐이니, 더더욱 마음대로 화도 내고 응어리를 풀어내야 현실에서도 조금 더 후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라고 정유정 작가는 말했어요.

만약 기차가 오는 시간을 안다면 타기 직전에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 날라차기를 하고 휙, 기차 속으로 몸을 던지면 되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기차가 오는 시간을 모르네요.

언제 올지 모르지만 기어이 오고 말 그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픈 마음만 움켜쥐고 살지는 않았으면 해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은 저 멀리 치워버리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노력도 조금은 줄이고.

내가 내일 죽는다면 너 같은 놈은 벌써 끝이야! 하며 일갈해버리고요.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의지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썼으면 좋겠어요.

무쓸모 한 인간들에게 에너지를 나누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사는, 플랫폼에서의 당신이 마냥 행복했으면 합니다.


추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넘쳐나고, 제 글은 한없이 못나게 느껴지는 날들이에요.

그래도 그냥 써보려고요.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가을 아침,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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