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강명, '책 한 번 써봅시다' 중에서
어째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이건 저를 아주 오래 괴롭히던 고민이었어요.
저는 비교적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이십 대까지는 너무 주변을 너무 신경 쓰느라 무엇 하나 제 의지대로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서른이 넘어서부터 조금씩 남들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지금은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요.
그건 아마 모두에게 사랑받겠다는 욕망이 부질없다고 느낀 후부터였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도 믿지 않고 부정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선善과 업적을 가득 쌓은 위인들도 정적이 존재하고, 아름다움과 멋짐으로 무장한 스타들도 안티가 생기고요. 그런데 내까짓게 뭐라고 모든 이들이 날 사랑해야 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 난 그냥 내가 좋아하고 납득하는 영역의 삶을 살겠다, 이렇게 다짐했어요.
그래서인지 제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게 그리 부끄럽지는 않거든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것도 나다, 하는대요. 이상하게 글을 쓰는 것만큼은 선뜻 이야기하기 주저스럽네요. 아직 완전한 제 업業이 되지 못하고(기준은 일을 통한 수입의 유무) 취미 이상 생업 이하의 언저리에 있기 때문일까요.
회사를 관뒀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나 백수야' 하고 말하곤 했는데, 어째서 '글을 씁니다'는 말은 이렇게 입을 떼기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뭐, 아직 책 한 권도 제대로 못 낸 게 제일 큰 이유겠죠. 또 제가 지닌 작가의 이미지와 저라는 인물과의 부조화 때문이기도 하고요. 무릇 작가라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뚜렷한 주관과 사회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 뛰어난 문장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고루 지녀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하거든요.
다른 공모전은 떨어져도 금방 훌훌 털어내는데, 이상하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는 오래도록 집착과도 같은 욕심을 부렸어요. 그건 실로 단순하게 제가 가장 오래 고집했던, 가장 편안하게 쓰이는 글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잘 쓰고 싶었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잘했다 말해주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간절함이 너무 커지니 어느 순간 쓰는 게 무서워졌고 그러다 결국 쓰는 게 싫어지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하지만 또 쓰는 걸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방황 끝에 결국 브런치북 프로젝트 응모가 끝난 11월부터 석 달간 이곳은 들여다보지도 못했어요. 혼자 아무도 보지 않는 노트에 썼다 지웠다 또 쓰기만 했어요.
그렇게 도전과 탈락, 좌절과 멈춤을 반복하는 사이에 결국 마주한 것은 저의 부족함이었어요. 우선 '작가로서의 실력'이 부족하고 또한 '그것을 채울 노력'이 부족하며 '그럼에도 읽게 할 능력' 역시 부족함을 깨달았지요. 내가 쓰는 쓰는 글도 좋지 않나 싶던 작은 시작이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커다란 욕망으로 자랐지만, 결국 한참 모자란 저 자신만 발견하게 됐어요.
그걸 깨닫기까지의 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여전히 찌릿하고 아프지만 어쩔 수 없겠죠. 더 노력해보다 안 되면 거기까지다 하고 받아들이고요. 그래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되면 또 노력해보고. 그렇게 사는 수밖에요.
저는 아직도 글을 쓴다 말하는 데에 주저스러워요.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고 읽고 쓰며 사는 삶이 어느 정도 작가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하면 이것을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조금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간혹 '브런치에는 일기 같은 글이 너무 많다', '글은 많지만 읽을 만한 건 별로 없다'는 글을 보고 혼자 괜히 얼굴이 벌게지고 부끄러워지곤 했어요. 제가 쓰는 글이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정도의 글밖에 쓰지 못한다면 조금 더 즐겁게 지치지 않고 쓰고 싶어요. 물론 좋은 글로 인정을 받는다면 더더욱 좋겠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읽힐 것을 생각하며 남에게 맞추느라 쓰는 즐거움을 잊는 것보다는, 우선 제가 즐거운 글을 더 많이 쓰고 싶어요. 그것만이 제 부족한 단어들로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있어요.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렇게 뒤늦은 2021년의 다짐을 전해봐요. '의미의 우주'에 이미 발을 들였으니 어떻게든 저의 의미를 보태보겠다고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족하고 모자라 보일지라도,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2021년이 되시길. 그리고 그 안에서 담뿍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9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