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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08. 2020

그 시절 스파이였던 우리

- 사카키 쓰카사, '밤을 달리는 스파이들'

밤하늘은 파랗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까만 세상 속 푸른빛을 띤 하늘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이 사실을 초등학교 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까지 밤하늘은 무조건 검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연하잖아요.

암흑 같은 세상을 뒤덮은 하늘이 어떻게 검은색이 아닐 수 있겠어요.


그런데 막상 올려다본 밤하늘은 검지 않았어요.

푸른빛이 가득하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학교에 가니 조금 으쓱해졌어요.

친구들은 아직 모르는, 어쩌면 엄마나 선생님도 모를 이 사실을 이제 저는 아는 거였으니까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저만의 비밀 하나를 가지게 된 거예요.


여기, 어린 시절의 저처럼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문부라는 위장신분을 가지고 있는데요.

실상 그들의 관심은 별 너머 저 멀리에 있어요.

지금까지의 삶보다 더 넓은,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하늘을 찾는 사람들이었지요.


이 책의 주인공은 모두 네 명입니다.

코드네임은 조, 붓치, 기, 그리고 게이지.

이들에게는 스파이로서 저마다 부여받은 임무가 있어요.


여성의 자립을 인정하지 않는 집안에서 독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야 하는 조.

조부의 폭언에서 벗어나, 이루기 어려운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싶은 붓치.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야 하는 기.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무난하기만 한 삶에서 자신만의 스페셜을 찾고픈 게이지.


요원 사이의 지나친 결속은 금물입니다.

자칫하면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들은 '약속은 나누지 않는다, 이별을 질질 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스파이의 규칙을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규칙은 각자의 미션은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들은 각자의 미션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요원으로 성장해요.

그리고 결국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노력한들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하진 않았겠지요.

밤하늘을 보며 함께 싱싱한 야채를 요리해 나누고, 따뜻한 커피로 온기를 더하며 함께 한 시간이 없었다면 미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글쎄, 성공했다 한들 아주 건조하고 밋밋한 시간으로 기억되었을 겁니다.


지금 제 나이를 접어 펼치면, 가운데 그어진 금 사이로 교복을 입은 제가 보여요.

모든 가능성을 다 가지고도 살얼음장 같은 매일을 살아야 했던 시간.

가족과 학교와 세상 모두의 눈치를 보며 살았어요.

때로는 까칠한 무기들을 하늘 위로 쏘아 올리기도 했고, 숨어서 한없이 눈물을 뿜어내기도 했던 날들입니다.

그때는 그저 바보처럼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는 저의 세계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고, 조심스레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던 거였지요.


그래요.

그 시절엔 저 역시 스파이였습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여기까지 왔구나, 그립게 그 시간을 돌아봅니다.


아무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해 매일 밤을 달리고 달리던 어리던 제가 벌써 이렇게 어른이 되었어요.

자신의 임무를 멋지게 마친 네 스파이들 역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지요.

고단한 스파이의 나날을 잘 견딘 우리 모두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이 밤, 여전히 어느 하늘 위를 달리고 있을 또 다른 스파이들에게도, 마음을 가득 담아 응원을!




하늘에 있는 것은 별만이 아니다. 비행기의 불빛과 멀리 떨어진 인공위성의 .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그들이 별과 함께 사뿐히  영혼을 들어 올렸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게 만들 만큼.
나는 혼자서 빛날 수 있는 별로 있고 싶다. 하지만 그것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훨씬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밤은 넓고 자유롭구나.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잘될지 어떨지는 니 하기에 달렸지. 이렇게 울만큼 좋아한다면 스스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기의 말에 나는 살짝 찔렸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도대체 어떤 노력을 했던가.
가닿지 않아서 좋은 것도 아마 이 세상에는 있을 것이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어른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이고 싶다. 게이지는 게이지대로, 조는 조대로, 기 또한 기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자유를 얻는 열쇠는 분명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을 터이니.
"특별한 존재이고 싶다,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특별하지 않으니까 더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것은 아마 나라는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근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없어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면 이 세상에 나는 필요 없다. 그래서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만의 뭔가'를 찾는다.
하지만 게이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다음 해답까지를 찾고 있다. 필사적으로 나다움을 드러내려는 것 자체가 흔해빠진 행동이라는 사실을.
"...... 넌 특별해."
붓치 뒤에 우두커니 서 있던 기가 불쑥 중얼거렸다.
"너는 내게 특별해. 조도 특별하고 붓치도 특별해. 이 밤도 특별하고. 그래도 불만이 있으면 지금 여기서 말해!"
누군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타인의 존재.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들이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얼굴.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은 같은 전쟁터를 경험한 자들.
임무를 껴안은 고독한 밤이면 앞으로도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더는 고독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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