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연년세세年年歲歲'
한중언과 이순일은 벌써 일흔이 넘은 부부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장녀 한영진과 차녀 한세진, 장남이자 막내인 한만수가 있지요. 『연년세세年年歲歲』는 이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이순일과 한영진, 한세진을 세 모녀를 통해 여성의 삶을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고 이야기합니다.
『연년세세』는 「파묘」, 「하고 싶은 말」, 「무명無名」, 「다가오는 것들」네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주인공은 이순일이었다 한영진이었다 한세진으로 각 단편마다 달라집니다. 소설을 읽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지만 다 적자니 부족한 제 글로는 정리가 다 안 돼서요. 그냥 제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두 인물, 이순일과 한영진에 대해서만 잠시 써보려 해요.
이순일은 어린 시절 전쟁을 겪으며 부모를 잃고, 어린 여동생과 함께 할아버지 손에 맡겨지는데요. 이 여동생마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요. 그리고 평생 이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순일은 동생이 죽은 일을 할아버지가 한 번도 입에 내지 않은 것은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이해합니다.
외조부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순일은 그 말을 다 들은 것 같았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녀는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좋은 거 해준다는 고모의 말을 믿고 고모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요. 기대와 달리 고모 부부와 그들의 일곱 아이까지 대가족 살림을 맡아 식모살이를 하게 됩니다. 도중에 옆집 친구 순자의 도움을 받아 서울로 도망을 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독일로 떠날 꿈을 꾸지만 결국 다시 붙잡혀오지요.
화재로 집이 전소되면서 고모 가족이 부산으로 떠나게 되는데, 그때 도망치듯 한중언과 결혼을 하여 세 아이를 낳고 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장녀인 한영진의 집 아래층에 한중언과 살며 한영진의 아이들과 살림을 봐주고 있지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이순일은 가족을 돌보고 집안을 보살펴야 하는 일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가 일평생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식들이 잘 사는 것, 그뿐입니다.
손아귀에 힘이 하나도 없는 아이들. 뭘 움켜쥘 줄을 몰라 바깥에서 무슨 일을 당하면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사라질 것 같은 아이들.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이순일은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장녀 한영진 역시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압니다. 한영진은 이순일이 이미 3년도 전에 버린 등산화에 대해 화를 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정작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말하지 않음을, 그리고 그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임을 한영진의 새 등산화를 사며 이순일은 생각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한영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하여 집안의 실질적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 왔어요. 아버지 한중언이 돈을 잃어 가세가 기울자, 하고 싶던 그림을 포기하고 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도맡았지요.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아랫집에 부모님의 살 곳을 마련하고 생활비까지 드리고 있습니다.
일터로 가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그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일하고 먹고 마시며 돈을 버는지를 봐야 했다. 그렇게 버는 돈으로 그들이 먹고살았고, 살고 있으니까. 한영진은 그렇게 배웠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시장에서 부모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그걸 배웠다.
어느 날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한영진은 낯선 외국인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불쾌해합니다. 그가 매력 없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리 없으니 불순한 의도를 숨겼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결국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남편 김원상의 말이었음을 깨달아요. 하지만 늘 그렇듯 김원상은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는 그저 덜 생각하는 것일 뿐이죠.
한영진은 그걸 두 번 세 번 읽은 뒤에야 자기가 불신한 것이 외국인이나 그의 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외국인, 그는 불순한 의도를 숨기려고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의 의도 같은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나였어, 하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내가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불신한 건 그 외국인이나 그의 말이 아니고 나였어...... 네가 그 정도로 매력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게 김원상의 생각인 것 같았고 한영진 자신의 생각이기도 한 것 같았다. 더러운 거짓말. 한영진은 그 말을 골똘히 생각하며 매장 쪽으로 걸어갔다.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한영진은 김원일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만, 그제야 모성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지요. 모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고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이들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녀의 육아를 돕는 이순일의 노동이 있었고요. 그러나 모성의 허구와 이순일의 헌신을 알면서도, 이순일이 중절한 경험을 털어놓자 한영진은 왠지 모를 수치심에 자리를 피합니다.
모든 게 끔찍했는데 그중에 아기가, 품에 안은 아기가 가장 끔찍했다. 그 맹목성, 연약함, 끈질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독차지하려고 나타나 당장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타인. 한영진은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 걸,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영진의 모성은, 그걸 부르는 더 적절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언젠가 한영진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타고난 것이 아니고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되었다. 그건 만들어졌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한영진은 둘째를 낳을 수 있었고 첫 번째보다는 여유 있게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지금은 좋아했다. 이순일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한영진은 알고 있었다. 이순일의 노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나는 엄마의 몸이라는 것을...... 그것의 정체를 이제 다 안다고, 알아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 순간에 그 이야기가 그렇게 끔찍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알았으니까 이제 자요.
너무 늦었어.
이순일은 언제나 한영진을 살뜰하게 챙겨요. 일이 끝난 한영진에게 늦은 시간에도 매일 새 밥을 지어 먹이는 이순일이지만, 결국 그 밥으로 한영진을 붙잡아두었다는 걸 그녀는 압니다. 뉴질랜드로 떠나 그곳에서 정착하려는 막내 한만수를 이순일은 한 번도 잡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음을 아들인 만수에게는 왜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하지만, 결국 오늘도 한영진은 하고픈 말을 삼키고 맙니다.
항상 새 밥과 해 국이었다. 한영진은 밤마다 꾸벅꾸벅 졸며 그 밥을 먹었고 월급을 받으면 그 상에 월급봉투를 딱 붙이듯 내려놓았다. 그 상을 향한 자부와 경멸과 환멸과 분노를 견디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한영진은 오래전에 그 말을 들었고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말을 지침으로 여겼다. 이순일도 그랬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살아보니 정말이지 그게 진리였다. 현명하고 덜 서글픈 쪽을 향한 진리.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한영진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순일에게 묻고 싶은 오랜 질문이 왜 나를 당신의 밥상 앞에 붙들어두었는가. 한영진은 그러나 그걸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 질문을 들은 이순일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을 대면할 용기가 없었다. 이순일은 이제 칠십 대였고 일생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았다. 아마도 끝까지, 그걸 묻는 순간은 오지 않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그런 걸 물으면 엄마는 울지도 몰랐고 한영진은 엄마가 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자꾸 나의 외할머니와 엄마와 숙모와 또 다른 내가 알던 그녀들을 떠올립니다. 특히 이순일과 한영진에게서 엄마가 겹쳐 보여요. 주어진 운명 위에서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며, 자신의 삶을 살고자 바랐으나 결국 엄마로 기억될 나의 엄마.
엄마를 여자로 보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요.
엄마에 대한 미움이 사라진 건 언제였을까요.
엄마의 삶의 그늘에 눈을 돌린 건 언제였을까요.
아직도 자신의 늙음보다 딸의 나이 듦이 더 마음 아픈 나의 엄마.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앞에서는 이기적인 딸로만 사는 나를 어찌하며 좋을까요.
나의 작은 딸은 또 내 생을 디디고 올라 자신의 삶을 짓겠지요.
만일 내가 늙어 아이가 자란다면 백번이나 늙겠어요.
나 역시 엄마의 세월을 딛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렇게 삶이 또 이어지는 것일 테니.
영원히 서로의 뒷면은 보지 못한 채 살아가더라도, 보이는 한 면을 전체라 생각하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우리라도 괜찮겠지요.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한 면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인간이니까요. 그만하면 서로를 다 가진 사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보일 수 없는 뒷면은 그대로 숨겨둬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수십 년 살림으로 손이 굳고 곱았는데도 뜨거운 것에 닿으면 여전히 뜨겁다는 것이 이순일은 성가시면서도 경이로웠다.
아주머니, 그 뜨거운 것을 평생 만지고도 여전히 그것이 뜨거우냐고 이순일은 묻고 싶었는데, 그런 것은 물을 수 없어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소금을 너무 많이 주셨다고만 말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그대로 받아 딱딱하게 굳은 손이라도 여전히 뜨거운 것이 닿으면 아파요. 평생 순대를 파는 아주머니도 순대를 꺼낼 때는 여전히 뜨거움을 느껴요. 그렇게 고통은 익숙해지는 일 없이 반복되겠지만, 그 고통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잘 살아내야 하겠지요.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 내 아버지는 그것이 인생의 비결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더라도 내 아이는 하늘에 달린 가장 싱싱하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그러나 모르는 사이 오물을 아이의 입에 넣었다는 걸 깨달은 후, 차마 미안하단 말을 할 수도 없어 괜스레 아이의 입만 닦게 되는 것을. 아이 역시 하고 싶은 말을 끝내 참고 깊은 눈 저 멀리 원망을 잠시 담았다 눈을 감고 마는 것을. 그것이 삶이라는 걸 이제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됩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