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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26. 2021

반전의 짜릿함은 이런 것

'영매탐정 조즈카', 아이자와 사코

추리작가인 고게쓰 시로에게 어느 날 여동생처럼 아끼는 대학 후배 구라모치 유이카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사실 유이카는 얼마 전부터 꿈에 우는 여자가 나타나 고민이었는데, 친구 마이와 점술가를 찾았다가 그의 소개로 영능력자를 소개받았어요. 그녀는 영능력자를 함께 방문해달라 고게쓰에게 부탁하고, 고게쓰는 반쯤은 추리작가의 호기심으로 찾은 자리에서 신비로운 영매 조즈카 히스이를 만나게 됩니다.


문득 숨을 삼키게 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인형 같은 얼굴과 호리호리한 모델 같은 체구, 조모가 영국인에 북유럽 쪽 피가 섞여 비취빛 눈매가 신비로운 느낌의 조즈 카는 냉정하고 차가운 분위기로 상대를 압도하는 영매였어요. 하지만 그건 진짜 조즈카와는 거리가 있었는데요. 조즈카가 워낙 물렁물렁한 성격에 못 미덥고 위엄이 없어 보여 어시스턴트인 지와사키가 아이디어를 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죠.

조즈카는 우는 여자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유이카의 집에 방문을 요청하고, 곁에 있던 고게쓰도 얼떨결에 함께하기로 약속합니다. 하지만 당일 아침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유이카. 연락이 되지 않는 그녀를 걱정하여 유이카의 집을 찾은 고게쓰와 조즈카는 죽어있는 유이카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범인은, 여자예요."


현장을 보고 쓰러질 듯 비틀거리던 조즈카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죠.

사실 고게쓰는 과거 수사에 도움을 준 덕에 인연이 닿은 경시청 가네바 마사가즈 경부를 통해 이따금씩 수사에 조언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가네바 경부를 통해 유이카의 죽음이 빈집털이범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전해 듣지만, 조즈카는 우는 여자와 관련된 죽음이 유이카 이전에도 네 건이나 더 있었다며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주장합니다.


우는 여자의 영혼.
그 영혼이 지켜보았던 자는 일 년 이내에 반드시 죽는다.


조즈카는 유이카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고게쓰에게 자신의 힘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자고 제안해요. 그녀는 단순한 영매가 아니라 사고 현장에서 죽는 찰나의 광경을 볼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거든요.


고게쓰는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히스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후회와 공포를 머금고도 한 걸음 내디딘, 진실에 덤벼드는 이의 눈빛으로 보였다.
"사자가 내는 수수께끼를 선생님이 풀어주세요."


결국 고게쓰는 조즈카의 간절한 요청에 그 제안을 수락하죠.


"영적인 현상에 논리를 갖다 대는 건 우습긴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즉 유이카는 우는 여자를 봤기 때문에 죽은 것인지 아니면 유이카가 죽을 거라서 여자가 운 것인지, 그 의문을 해결하고 싶어요."


그렇게 영시로 범인을 특정하는 조즈카와 그에 대한 논리를 제공하는 추리작가 고게쓰의 공조가 시작되었어요. 두 사람은 유이카의 사건 외에도, 괴기 추리소설 작가 구로고시 아쓰시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흑서관 살인사건'과 여고생이 하굣길에 연쇄적으로 목 졸려 살해당한 '여고생 교살사건'을 함께 해결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게 돼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상상할 여지는 있었다.
소외되었을까. 사람들이 무서워했을까.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오려 하지 않았던 걸까.
고게쓰를 똑바로 쳐다보며 호소하던 히스이의 두 눈망울을 떠올렸다.
결의와 두려움과 공포가 뒤섞인 눈동자.
히스이는 이 힘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했다.
왜, 그런 힘을 가진 것인지.
어째서, 자신이 그런 숙명을 짊어져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끝에 그들은 몇 년 전부터 어떤 흔적도 없이 젊은 여성들을 잇따라 죽여 '망령'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마의 실체를 쫓기 시작합니다. 완벽한 증거인멸과 특징 없는 생김새, 치밀하게 준비된 살인에 경찰은 그의 정체를 짐작도 하지 못하는데요. 사건이 미궁을 헤매는 사이 그는 점점 조즈카를 향해 다가옵니다.


"범인이 노리는 건 이십 대 초반, 흰 피부에 작은 체구, 긴 머리, 미인형......이었죠."


과연 조즈카와 고게쓰는 연쇄살인마를 밝혀내고 조즈카를 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요?




책 띠지에 쓰인 "미스터리 소설 차트를 석권한 압도적인 No.1 미스터리!"라는 수식어를 보고도 당최 흥미가 생기지 않았던 건, 아무래도 그 어린이용 판타지 소설 같은 표지 때문이었어요. 표지의 강렬한 이미지가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같은 이력을 모두 농담처럼 희석시켜 삼켜버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던 건 읽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추천과 찬사 때문이었어요. 반은 기대하며, 또 반은 내심 '뭐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하는 심보로 책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책이 반을 넘어가도록 이게 그렇게 격찬을 받을 정도의 추리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내내 있었어요. 영매와 추리작가의 공조가 흥미로운 설정인 건 사실이지만, 사건도 해결도 그냥저냥 괜찮은 정도였거든요. 거기다 제게는 너무 인형같이 연약하기만 한 조즈카와 마치 그녀의 보디가드 같은 고게쓰라는 캐릭터가 엄청 매력적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마지막 반전도 '하, 이 정도야?'라고 생각할 때! 그때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맛보게 됐습니다. 마지막에 충격의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라니... 옆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것도 미루고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이 기쁨은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선물이었답니다. 결국 저 역시 작가에게 박수를 치며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부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읽기를 권합니다. 재밌거든요.


히스이는 영혼의 악의나 해의害意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악의도 해의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버젓이 존재한다.
고게쓰는 그 같은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고 그저 사람을 저주해 죽이는 악령이 존재한다면.
딱 한마디로 자신의 인생이 뒤집혀버리는 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고게쓰도 그런 경험이 있다. 눈을 감으면 그 말을 했던 사람의 표정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고작 한마디로 나라는 인간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순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단지 그런 불운을 맞닥뜨리지 않았을 뿐, 거기에 특별한 차이는 없을지도 몰라요." 고게쓰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누구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사람을 죽입니다. 그걸 경험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건, 그저 행운일 뿐이겠죠. 우리는 그런 차이만으로 살아있는 건지도 몰라요."
"기이한 존재가 있든 없든 초자연현상이 일어나든 말든, 논리를 구축하는 노력을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탐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명탐정의 시선을 가져야 해요."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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