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atia_DubrovnikⅥ
8시.
성벽의 문이 열렸다.
계단을 따라 성벽을 오르니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소박하지만 꽉 찬 행복의 공기가 온몸을 가득 채웠다.
빨간 지붕, 세월이 묻어있는 담, 교회의 종들, 커다란 돌산, 거미줄처럼 뻗은 골목골목. 매끈한 거리, 알록달록 빨래, 얌전한 고양이, 한 번쯤 살고 싶은 다락방.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멀리서도 밑바닥까지 투명하게 다 보이는 짙은 코발트빛 바다, 그 위를 떠다니는 배, 곳곳을 느긋하게 누비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이 한걸음 걸을 때마다 새롭게 모습을 바꾸어 나타났다 걸음 뒤쪽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엄마와 아빠가 하나의 그림이 되어 내 눈에 들어왔다.
쉼과 여유와 기쁨을 잊고 산 자의 얼굴은 오래도록 무색이었다.
그 위에 스포이드로 고운 색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생기가 감돌았다.
엄마 아빠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져 주위까지 밝게 물들였다.
그 얼굴이 좋아 나는 잠시 성벽 아래를 보는 것도 잊고 자꾸만 자꾸만 엄마 아빠를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삶 사이로 나의 사소한 삶이 겹쳐졌다.
늘 부족하고 못나게만 보였던 나의 시간들.
하지만 그 날 그 길 위의 모든 것이 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굳이 서둘러 걸을 필요가 있을까.
천천히 음미하듯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마음에 새겼다.
여행은 성가신 것, 이라고 생각했다.
큰 트렁크에 짐을 꾹꾹 욱여넣고 낯선 사람들에 섞여 새로운 환경으로 자신을 떠미는 것.
그건 소심한 데다 곧잘 주눅 드는 나와는 영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과는 별개로, 나는 이십 대의 대부분을 떠돌아다녔다.
돌이켜보면 몸도 마음도 발붙일 곳 없이 부유하는 날들이었다.
맞지 않는 전공으로 고민하다 휴학을 하고 떠난 타국에서 이십 대의 반을 보냈다.
그곳에서의 생활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었기에 필요성을 더 느끼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귀국을 했다.
조교보다 나이 많은 외로운 복학생.
스펙을 쌓기 위해 억지로 해야 했던 맞지 않는 경험들.
바라던 일은 아니지만 무난했던 직장.
남자 직원들이 대부분이던 회사에서 꽃이 아니면 적이어야 했던 사회생활.
한 달씩 출장을 다니곤 했다.
오전에 회의를 마치고 출장을 갔다 저녁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엔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원치 않던 이른 성공과 밑바닥이 곧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 뒤로 회의와 탈진이 덮쳤다.
결국 나는 명함을 내미는 순간과 월급 받는 날에만 행복한 사람이 되어 완벽하게 시들어버렸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데, 이렇게 죽으면 눈도 못 감겠다 싶었다.
그렇게 회사를 관뒀다.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에 명품 백을 들고, 선덕 여왕처럼 치렁치렁 늘어뜨린 귀걸이를 한 채 발목이 부러질 듯 우뚝 솟은 하이힐을 신던 내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한 50만 원만 있으면 그럭저럭 행복하게 한 달을 보낼 수 있는 진짜 내가 나타났다.
그런 나를 찾고 나서야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눈 앞의 것들에만 집중하고 싶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새로운 세상.
그래, 이렇게 계속 걸어가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보일 것이다.
그저 남들이 보여주는 사진만 보며 '그래, 사는 게 다 이렇지' 하고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내딛는 것.
그것을 용기라고 부른다면, 나는 평생 용기를 지닌 채 살고 싶다.
꼭 지금처럼.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