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 '당신이 옳다' 중에서
다음 달이면 세 돌이 되는, 이제 네 살인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길.
어제도 평소처럼 함께 어린이집으로 향했어요.
그리곤 문 앞에서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오늘도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라는 말을 했는데요.
아이가 이런 말을 했어요.
"근데 OO 이는 나 싫어해."
입을 비쭉 내미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가슴이 철렁해서 왜 그럴까, 하고 물었더니
"몰라. 나는 좋아하는데."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럼, '나는 OO이 좋아하는데 친하게 지내자' 하고 말해보면 어떨까?"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신나게 어린이집을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 와서 내내 아이에게 해준 말을 곱씹어보았어요.
과연 맞는 말을 해준 걸까 싶어서요.
저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했어요.
상대가 바라는 행동을 하고 원하는 말을 했지요.
실수하면 모자라 보일까 봐 늘 조심했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항상 긴장하며 살았어요.
내밀한 제 속에 질투, 우울, 불안, 욕심, 심술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늘 존재한다는 걸 알기에, 들키지 않으려 사람들과 선을 긋고 일정한 거리를 뒀어요.
가면을 바꿔 쓰듯 만나는 상대에 맞춰 화제를 바꾸거나 대화의 톤을 조절하고, 마치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아니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어디서든 저를 싫어하거나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했어요.
때로는 그 못마땅함에 분명한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아무 이유가 없을 때도 있었고요.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아도 제 의지와 관계없이 멀어지는 이도 있었지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어떤 가치 판단 없이 무조건적으로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 말이에요.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떠나 나를 아껴주는, 곁에서 힘이 돼주는 이들도 늘 있었지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위대한 신의 존재도 부정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역사 속 위인들도 정적이 있었고, 저항을 받았지요.
재능 있고 빛나는 스타들에게도 안티가 있어요.
그러니 아주 보통의 사람인 제가 어떻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겠어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삶이 끝났을 때 지구에 제 존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티끌만 한 나라도 좋아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게 축복이구나 싶었어요.
외부의 시선이나 평가, 타인의 애정에 휘둘리다 보면 사막을 오래 헤맨 것처럼 마음이 곧 부서질 듯 건조하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모래 폭풍을 맞은 듯 아파 쓰러지고 말아요.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냥 흘려보내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되도록 선한 방향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길에 기꺼이 함께 해주는 나의 사람들을 있는 힘껏 사랑하고 안아주는 것.
어쩌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만 같아요.
종일 이런 생각을 하다 아이 마중을 갔어요.
아이에게
누군가 너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그렇다고 네가 나쁜 건 아니라고.
그 친구의 마음은 그대로 두고 너는 네 삶을 살면 되는 거라고.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바라보면 된다고.
엄마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다고.
아이를 꼭 안고 이렇게 말을 해줘야지 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문이 열리고 아이가 보였어요.
그런데 아이 옆에 OO이가 손을 꼭 잡고 함께 웃고 있네요.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는 답을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또 깨닫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해 줄 말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그저 믿고 사랑해주는 것뿐이라는 것을.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