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언젠가 별이었을 우리가

- 최은영, '밝은 밤' 중에서

by hearida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 최은영, '밝은 밤' 중에서



십이월의 첫날이네요.

뭘 했다고 벌써 올해의 한 달도 열한 번이나 지나 마지막 열두 번째 달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쏜살같이 흘러버린 시간을 후회하고 지나간 열한 번의 달들을 아쉬워했지만,

또 한편으론 남은 한 번의 달 속 서른하나의 낮과 밤을 열심히 살겠다 다짐했어요.

다음 해의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고요.

묵은 생각과 물건들을 치우고 빈자리에 새 것들을 채우는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다시 그저 그런 삶이 시작되지요.

힘이 잔뜩 들어가서 마구 달리다 갑자기 주저앉아 나태해지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또 어느새 12월 1일이 되곤 해요.


늘 무언가 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되지 못한 날들이에요.

화려하고 빛나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평범해지고 말았네요.

쿨하지도 뜨겁게 타오르지도 못한 채 뜨뜻미지근한 일상을 살고 있어요.

그래도 그 미온의 공기 속에 사랑하는 이들과 제가 무탈히 잘 지내고 있으니 그저 감사한 날들입니다.


우주에서 본다면 저는 티도 안나는 아주 작디작은 존재잖아요.

결국 지나가는 사람이겠죠.

아무리 흔적을 남기려 해도 결국 이 땅 위에 점 하나 새기지 못하고 그저 스쳐가는.

그리고 이 글도 그저 지나가는 글일 거예요.

수많은 글들 속 티끌보다 가벼운.


온 힘을 다해 쌓은 성이 작은 파도 한 번에 무너져버려도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닐 거예요.

바다 깊숙한 곳까지 흘러내려 빛내지 못하고 그저 잠든다 해도 우리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

누구도 기억 못 하는 삶이라도 내가 살아냈고 누구도 기억 못 하는 글이라도 내가 써냈으니.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이렇게 잘 살아있으니.

괜찮아요. 감사해요.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우리의 고통이 서로 부딪혀 눈처럼 녹아 사라지길.

한숨마저 따스한 온기로 닿는,

언젠가 별이었을 우리가 가끔은 반짝 빛을 내는

그런 12월이었으면.


Paris, France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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