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rida Jul 30. 2022

'수명을 다해가는 은하처럼 외롭고 쓸쓸한 빛'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온갖 욕구로 가득한  80년대 한국에 놓인 그녀와 나, 그리고 요한의 이야기.


 소설에는 여러 형태의 소외가 적혀 있는데, 특히 '미의 표준' 도달하지 못함에 동반하는 고통과 적나라하게 부딪혀  단면을 그려낸다. 외모로 인해 사랑을 단념한 그녀가 자신의 지난날과 괴로움을 적어 건넨 편지를 받은 '' 갈등과 행동, 그리고 애정을 슬픔 속에 음미했다.

살면서 외모가, 특히 젊은 시절에는 매우 커다란 장애다. 아름답던 아니던 외형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젊은 날엔 괴로웠고 이젠 성가신 내게 왠지 모르게 서글픈 안심을 주었다.


가난한  속에서도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  젊은이. 인생에서 가장 반짝여야  젊은 시절에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막막한 현실에 갇혀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차가움은 차라리 편안하다. 쓸쓸한 이야기지만 마지막에 상실로부터 회복의 징조가 보인 것이 다소의 구원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화려함을 쫓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의 파도에 위화감을 느낀다.  기분을 탐색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걸까.


세 개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열어도 변하지 않는 정적이...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일 뿐이니까. 그것이 자신의 고통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인간도 타인의 고통에 해를 입지 않는다.
영혼의 걸음은 생각보다 느리고, 세월은 내가 올라탄 말과도 같은 것임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겐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디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면(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인간의 외면(外面)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 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 듯 평생을 사는 걸까?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인간처럼,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해 온 인간의 마음은 오래 신은 운동화의 속처럼 닳고 해진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빨래로도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진 못한다... 변형되고, 흔적이 남은 채로... 그저 볕을 쬐거나 습기를 피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인간은 과연 실패작일까, 인간은 과연... 성공작일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인간은 과연 달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과연... 스스로의 이면을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달까지 갈 수 있었을까? 달 위를 걸어 다닌 인간조차도, 그러나 스스로의 내면에는 발을 내리지 못한 채 삶을 마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없는 듯 돌아오던 새벽의 골목길에서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인간의 영혼은 저 필라멘트와 같다는 사실을. 어떤 미인도 말이야... 그게 꺼지면 끝장이야. 누구에게라도 사랑을 받는 인간과 못 받는 인간의 차이는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거품이 나올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꼭 캔을 흔들어요, 제기랄... 사랑은 분명 이 맥주 캔과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해. 뭔가 터져 나올 거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또 서로를 흔들게 되는 거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저는 당신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나라는 여자에게서 도망을 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결국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아름다움에는... 대접을 받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인간이 누구나 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억울한 점이 있다면... 그런 것입니다. 왜 균등한 조건이 주어진 듯, 가르치고 노력을 요구했냐는 것입니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분명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한 번도 스스로의 인생을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스스로의 태생만을 평가받아온 인간입니다.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은 극히 드물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나비인지 나방인지를 알 수 없는 애벌레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결국 나는 살아 있는 왕녀를 위한 왈츠가 아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서의 내 삶을 직시한다.



- 헤아리.다;heari.da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의 몸, 전장이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