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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Aug 23. 2022

증명을 종료합니다

- 아오사키 유고, '체육관의 살인'

 수업을 마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방송부 부장이 살해당했다. 그 시각 범행이 가능한 건 오직 탁구부 부장 사가와 나오 뿐. 경찰은 사가와를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지만 탁구부 1학년생인 하카마다 유노는 도저히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 결국 유노는 학교 제일의 수재 우라조메 덴마를 찾아가 보수를 약속하고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는데...

 무대 장막 밖에는 목격자가 될 학생들이 있고, 장막 안 무대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은 잠겨있는 밀실. 범인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살해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살해된 부장의 주머니 속 소지품과 남자 화장실에 남겨진 검은 우산, 방송실의 데크와 리모컨. 그냥 넘기기 쉬운 작은 단서로부터 범인에 다다르는 구성이 참신하고 독창적이었다.

 너무 많은 걸 노리지 않고, 캐릭터에 의존하지 않고, 범인의 심정이나 동기에 주안을 두지 않고! 이 3無 덕분에 오로지 밀실과 알리바이 풀이에 집중할 수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의 미스터리 로직 풀이는 그야말로 책의 백미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진 않다. 애니메이션과 피규어에 빠진 오타쿠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조금 약한 데다, 덴마가 열성적으로 애니메이션 관련 이야기를 할 때는 전혀 못 알아 들었으니까. 나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아서, 이 장치가 굳이 필요했을까 싶긴 한데 고독한 천재 해결사는 너무 진부해서라고 작가의 마음을 열심히 헤아려본다. 거기다 처음에 사건을 의뢰할 때나 추리해가면서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으나, 전체적인 재미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니까.

 어쨌든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가장 큰 장애물은 표지였다. 그 알록달록하고 요사시런(?) 그야말로 라이트노벨스러운 표지! 표지의 고비만 잘 넘기면 책장 안엔 본격 미스터리가 펼쳐지니 안심하시라.


 『체육관의 살인』은 제22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 작품이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이자 신본격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십각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 『암흑관의 살인』 등)'를 본따 지은, 아오사키 유고의 데뷔작. 이름만으로도 괴기스러운 기분이 드는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비하면 아오사키 유고의 '관'은 귀엽기까지 하다. 체육'관' 이후의 '관'은 수족'관'과 도서'관'이라니.

 이전에 읽었던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도 느꼈지만,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트릭을 기반으로 한 추리물을 참 잘 쓴다. 현장의 증거들을 바탕으로 소거법에 의거하여 용의자에 다가가는 그는 '엘러리 퀸 스타일'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정통 계승자이자, 신본격 미스터리의 영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수족관의 살인』을 읽으러 가볼까.




"아무튼 그래서 형사님 방식대로 어쭙잖게 말씀드리자면, 상황은 '증명 종료'입니다."
일부러 두 개의 추리를 준비해 중간에 상대에게 한 차례 주도권을 넘긴 후 매우 자연스러운 형태로 상대에게 추론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추론을 전혀 예상 밖의 방법으로 자신의 결론에 직결시킨다.
"걔는 완벽한 구제불능 인간이긴 하지만 머리만은 좋으니까. 바보처럼."
"바보처럼 머리가 좋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요."
"난 페어플레이란 걸 싫어하거든."



- 헤아리.다;hea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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