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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Aug 25. 2022

'창을 열면 바람도 혼자가 아니다'

- 장연정, '눈물 대신, 여행'

지나간 시간은 때로 음악 속에 존재한다.

어떤 시간은 장소와 함께 머물다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향기에 숨겨져 있다 드러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책과 함께 되돌아오는 시간도 있다.

『눈물 대신, 여행』 속에 새겨져 있다 책장을 펼치면 눈앞에 펼쳐지는,

나의 서른하나.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숙여 눈물을 떨구던.

울음터져 나올까 입을  다물고 하고 싶은  마저 삼키던.


많은 것을 잃었던 날들이었다.

길을 잃고

사람을 잃고

나 자신마저 잃기 쉬웠던 그 시절에.

놓치기 싫어 꼭 쥐고 있던 것들이 마치 모래처럼 쥐면 쥘수록 떨어져 나가던 그때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높기만 한 이상과 견디기엔 너무 처절했던 현실 사이에서

믿고 싶은 사랑과 믿지 못할 사람 사이에서.

곁에 있는 누구도 실체가 없듯 느껴지는, 물을 안는  같은 날들.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 위해

돌아오는 티켓을 찢을 용기를 얻고자 자꾸만 떠났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에서 엄마 손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어린아이처럼

살기 위해 여행에 매달렸다.


『눈물 대신, 여행』이었던 나의 삼십 대.


나달나달해진 책처럼 그때의 슬픔도 아픔도 이제는 바래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면 조금 아리고 외로워진다.

그러면 그 시절의 나를 어루만지듯 문장을 읽는다.

작게 소리 내어.

아름답고 따뜻하게 잘, 살기 위하여.




이 공기가 한 번 더 바뀌기 전에 나는 떠나야 한다.
그때가 오면, 지금 이 마음은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르므로.
오래된 옷에 매달린 보푸라기 같은 그 감정들을,
떼어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기저기 붙이고 다녔다.
그때의 나는 내가 너무, 무거웠다.
물먹은 빨랫감에서 물을 짜내듯이
나는 툭하면 내가 무거워 자주 울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그 말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된 그 순간.
텅 빈 수첩 한가운데 아름다움과 따뜻함.
이 두 개의 말이 나란히 적혔다.
나는 살겠다. 되도록 아주 잘, 아름답고 따뜻하게.
나는 기어코 살겠다.
내일 죽는다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곳이 어디든 내 마음을 내어준 곳이 바로, 내 집이라는 생각.
그러니까 여행이란, 맘을 뺏긴 세상 여러 곳에 내 집을 짓고,
소리 없이 허물어지는 그것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 있다.
잊지 말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사진 한 장.
끝이 없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저 한 방울, 한 방울.
그것들에게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내어줄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들의 수고로운 여정에 귀를 기울여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
비가 오면 창을 열자.

그리고 부디, 아무 일도 하지 말자.
지친 몸은 뉘이지만, 지친 마음만은 온전히 뉘이지 못하는 그곳. 떠나오기 전, 불 하나를 켜 두고 나왔다. 그 불빛 하나만이 나를 기다리는 도시로, 나는 지금 돌아가고 있다.
풍경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
그것은 시간을 가슴으로 새기며 사는 일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내가 다시 죽는 줄도 모르고
가슴속에 깊은 무덤 하나 만들고, 또 지우는 일이다.
그때 우리, 하는 일들은 하는 때마다 모두 되지 않았고, 주머니는 자주 텅 비었고, 몸무게는 갈수록 늘어났고, 서로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던 젊은 우리. 그렇게 우리는 까만 터널 같은 이십 대를 함께 지나왔다.
그래, 우리는 지금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잘못 살아온 것도, 잘못 살고 있는 것도 아니야. 다만 우리는 지금, 먼 훗날 함께 기댈 추억들을 쓰고 있는 거야. 춥고 외로울 때 비벼댈 수 있는, 아프고 허전할 때 끌어다 덮을 수 있는 그런 추억.
나는 생각한다.
사람은 가끔, 일부러라도 외로워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
이별이란 단어에 생의 한 부분을 베어본 이들은
함부로 이별이란 말을 꺼내지 않아.
나만을 위한, 이라는 수식은 어쩐지 눈물겹다.
나만을 위하는 사이, 너를 위한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끝에는 너마저 사라져 버리는 수많은 일들 속에서 배운 사실이다.
정신없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소중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필요하다.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해서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오랜 상처나 행복의 기억들과 자주 만나야 한다. 그때를 기억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기억하게 된다.
소리 없이 사라지고 소리 없이 생겨나는 생의 사소한 선들을,
마음껏 바라보고 쓰다듬어보는 일.
서로의 손에 새겨져 있는 부질없는 운명에 키득거리며 나의 손끝으로
당신의 운명에 가만히 접근해보는 일.
창을 열면 바람도 혼자가 아니다. 그렇게 분다.
대화가 없이도 불안해하지 않는 관계.
잠시 사라진 너의 말들을 붙잡으려 방향을 잃고 넘어지지 않는 관계.
내가 아는 사랑이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던져오는 물음표 같은
너를 기다리는 일이기보다
가끔씩 침묵하는 말줄임표 같은 너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과 화해할 필요는 없지. 단지 노래할 뿐.
이렇게 깎여지고 떠밀리다
언젠가 반짝, 하고 빛나는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을 믿게 된다.
'혼자'라는 말이 없었다면 별로 아름답지 못했을지도 모를 나의 일상.
이 말에 공감한다면, 당신은 '혼자'라는 말의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는 사람.
혹은 '둘이서'라는 말에 깊이 상처받아본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잖아. 절실해지면 작은 먼지 하나에도 기도할 수 있어.
 노래가 없었다면 나는 이 생을 제대로 차려살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이 세상의 모든 노래가 없었다면.
네가 나에게 불러주던 그 숱한 밤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 헤아리.다;hea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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