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장 도둑

영원한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없으니까

-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중에서

by hearida

"나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어떻게든 완성이 되는 형태여야 하겠지만. 완성처럼 보이는 미완성이어야 하겠지만.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이어지지 않은 것들은 끊어지지도 않으니까. 완성보다 미완성이 더 오래 지속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종결되지 않은 것들이 내 주변을 행성처럼 돌고 있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중에서



동화의 결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없다고 말하지만

예전엔 종종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영원히 그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곤 했어요.

그 지점이란 게

대학 입학이나 직장 입사이기도 했고, 때로는 연애나 결혼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살아보니 정말, 이 세상은 단 일 초도 영원히 지속되는 게 없네요.

죽어라 공부해 대학을 가면 기쁨도 잠시, 또 취업이라는 산이 기다렸고

직장에 들어가니 승진이니 연봉이니 머리 아픈 일들이 가득했어요.

겨우 모든 게 안정됐다고 생각한 순간 진짜 바라는 꿈을 발견하고 고뇌하기도 했고요.


연애도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 마음을 확인하면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그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몇 곱절 더 어렵지요.

결혼은 또 어떤가요.

결혼식 끝나자마자 애는 언제 낳냐, 둘째는 어쩔 거냐.

그렇게 돈 모아 언제 집 살 거니......


온 힘을 다해 달려 드디어 끝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문이 열리네요.

그 너머에는 이전보다 더 높고 더 힘든 허들이 기다리고 있고요.

그 허들 앞에서 다시 또 작아진 채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전까지 잘해왔다면 이번엔 실패할까 걱정,

못 해왔다면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할까 또 걱정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요.

"인생 다 살았냐"

제가 좌절하거나 포기하거나 시기할 때마다 저희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에요.

지금의 성공도 실패도 마침표가 될 수 없으니 너무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지요.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인생이라는 선 안에서 작은 점일 뿐 영원히 이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작년 한 해를 돌아봤어요.

글은 외면한 채 거의 쓰지 않았고

야심 차게 시작한 재테크도 마이너스가 되고

건강도 사람도 챙기지 못했지요.


그 와중에 아이가 잘 자라준 게 큰 수확인데

제가 뭘 한 게 없이 아이 스스로 자란 거라 생색낼 것이 못 되고

남편과 아이, 부모님과 화목했던 것도

가족의 사랑 속에서 제가 혜택을 본 거니 그저 감사할 일입니다.


2022년은 12월 31일로 끝이 났지만 시간은 결국 완성형이 아니라

2023년의 1월 1일로 이어졌으니.

여전히 실패하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행복한 날들은 반복되겠지만

종결되지 않은 나의 삶에 아직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요.


무언가 해내지 못해 아쉬운 작년은 그대로 흘려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잘 맞이하기를.

영원한 해피엔딩도 없지만 또 영원한 새드엔딩도 없으니

바라는 것은 그저 건강하고 무탈하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그리고 아둔한 말이겠지만

그저 찰나에 불과할 기쁨이라도 올해는 무언가 꼭 이뤄내기를.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udapest, Hungary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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