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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Apr 07. 2023

복근은 됐고 뱃살 좀 빼려고요

아직 뺀 건 아니고요

계단을 오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곤 한다. 헉헉거리며 계단을 오르면 다들 지레짐작하고는 대뜸 팔을 잡고 "무슨 다이어트냐"거나 "뺄 살이 어딨냐"고 만류를 하곤 한다. 허허, 참 다정한 사람들.

뭐, 평소에 알몸으로 다닐 일은 없으니 대체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건 옷으로 덮여 있는 모습이다. 얼굴에는 동안의 비결이라는 볼살 대신 퀭하게 옴폭 패인 자국만 남아있고, 어깨나 팔이나 다리도 딱히 크게 살집이 있는 건 아닌 터라 핼쑥하고 고단한 모양새랄까.

그러니 다이어트를 할 이유가 있냐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물론 나는 다이어트를 할 마음이 없다. 다시 밝히지만 내 운동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가늘고 길게 오래 살다 자연사를 하기 위함일 뿐. 그러나 이래저래 얘기하면 설명만 길어지므로 그냥 빙긋 웃으며 배를 가리킨다.

뱃살 좀 빼려고요


하지만 다이어트와 상관없이 뱃살을 빼겠다는 내 말은 백 프로 진심이다. 내 몸에서 꼭 제거하고 싶은 살덩이를 한 군데만 말하라 하면 그건 바로 배다.

어릴 때 먹은 녹용이 중학생 때 입맛으로 살아나 폭식을 시작한 후 갑자기 존재감이 폭발한 내 뱃살. 체중의 정점에 이르렀던 고등학교를 거쳐 다이어트에 목매던 이십 대를 지나 갑자기 체력과 함께 살이 소멸해 버린 삼십 대에 이르기까지, 깊은 산속에서 쑥쑥 자라난 인삼처럼 내 몸에 붙어 영양분을 쪽쪽 빨아먹고 성장한 나의 뱃살.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잘록한 S라인은 커녕 통짜 허리 한 번 가지지 못한 채 1년 365일 D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십 대에도, 가장 체중이 적게 나갔던 서른두 살 여름조차 허리가 딱 붙는 옷은 입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배는 항상 가려야 하는 곳이라, 조금이라도 배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치 뒷짐 진 채 수갑이 채워졌는데 코딱지가 인중에 붙은 걸 깨달은 범죄자같이 부끄러운 기분이라면 내 마음이 전달이 될는지.


그래도 예전에는 배가 아주 볼록하고 탱탱하게 나왔다. 앉아 있으면 튀어나온 뱃살이 아기 수박처럼 동글동글하니 매끄럽고 귀여웠는데, 임신과 출산을 겪은 후의 배는 영 힘이 없다. 이젠 앉아 있으면 육지에 떨어진 패러글라이딩 날개처럼 추욱 늘어져서, 아무리 힘내라고 응원을 해봐도 도통 생기가 돌지 않는다.

문제는 사라진 탄력만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배는 사람들 눈에 그다지 띄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고, 옷으로 잘 가리면 지금까지 수십 년 그러했듯이 가족 구성원 외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내 배는 고집이 그리 세지 않아서 타이트한 바지춤에 잘 숨기면 반나절 정도 눈가림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이 배가 나를 아프게 한다. 요즘은 조금이라도 배가 압박되는 느낌이 들면 그 순간 체기가 바로 올라온다. 체함과 동시에 두통이 나를 옥죄어오고, 그럼 약을 먹고 토하고 손을 따도 하루 정도는 종일 앓아야 한다. 이렇게 한 번 아프면 즉각적으로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임시방편으로 고무줄 바지나 원피스만 입거나 사이즈를 업해서 입는데 이것만으론 완벽한 해결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 뱃살은 정말 만병의 근원이구나. 체기 같은 직접적인 통증부터 자세가 틀어지는데 이르기까지, 지금 내가 아픈 이유의 반 이상은 이 뱃살에 있음을 요즘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뱃살과 단호히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단 계단을 열심히 타고 있고 매일 버피테스트를 거르지 않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를 중심으로 한 군것질도 줄이고 야식도 멀리한다. 하지만 함께 한 세월만큼 내 몸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탓인지 뱃살에는 좀처럼 변화가 없다.

그래도 살면서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한 게 처음이라 유유에게 나 이러다 올여름엔 크롭 입는 거 아니냐며 긴장하라고 말했더니 느닷없이 '나 올여름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 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뜬금없이 뭔 소린가 했더니, 내가 크롭티 입는 게 그만큼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뜻이었다참고로 유유는 벌써 몇 년째 일본어 초급을 공부 중이다. 화가 난다, 몹시 화가 난다, 진짜 화가 난다. 아오!

이래저래 분한 마음에 복부 운동을 찾아 유튜브를 보다 보니 르세라핌 복부운동이 눈에 띄었다. 나도 해... 해볼까? 근데 이건 약간 1+1 이벤트 같달까? 하나만 필요한 데 더 가져가라는 느낌. 그냥 살만 조금 덜어내면 되는데 복근까지 자꾸 쥐어주려는 것 같아 조금 부담스럽다. 난 건강해지기만 하면 되는데 막 너무 이뻐지면 어쩌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헛소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려보내주세요.


어쨌든, 건강을 위해 뱃살을 빼겠다 이거다. 바이바이, 나의 뱃살!


일단은 올라본다, 계단!!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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