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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Feb 10. 2019

생일, 주름살

영화 "피아노"

그의 이름은 베인스.

깡마른 어깨와 햇볕에 단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는 듯한 파리한 얼굴로 파도치는 해변에서 숨 쉬듯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에이다.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베인스는 거친 피아 바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에이다의 피아노를 그의 넓은 땅과 맞바꾼다. 그리고 베인스의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이 시작되는 영화 피아노.  
 
영화 피아노를 보고 그를 떠올렸다. 피아노뿐이었을까. "가을의 전설", "러브레터", "비포 썬라이즈"... 그 모든 영화를 보고 그를 생각했다. 그는 내 모든 감동과 내 모든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뉴질랜드에 갔을 때 피아 바다의 웅장한 광경에 무척 흥분했던 나는 그가 많이 그리웠던가 보다. 무엇 때문인지 싸워서 두 달간 서로 말도 나누지 않다 혼자 떠나온 뉴질랜드에서 나는 비로소 출산과 육아로 무거워진 삶에서 벗어나 그의 존재만으로 설레던 스물의 나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결혼으로 시작된 그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와 나. 그 시절의 우리가 그리웠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뉴질랜드의 시간. 나는 바람에 구르는 나뭇잎에도 까르르 웃는 소녀가 된 듯했다.  
 
이런 히스토리를 가진 영화 피아노가 며칠 전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코에서 베인스의 문신을 발견했다.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베인스의 문신처럼 눈에서부터 시작되어 콧등으로 올라가는 주름이 선명한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집중해서 까다로운 일을 처리하거나 힘을 써야 할 때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곤 했는데 그 습관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아 있었나 보다. 나는 당혹스럽고 낭패스러웠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이 주름이 이렇게 깊어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걸까. 나를 돌보지 않고 나에게 소홀했던 걸까. 아이크림을 코에 바르며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내 나이를 느꼈다. 까르르 웃던 소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살짝 우울한 채로 또 한 번의 생일을 맞이했다. 엄마를 위해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남편이 고맙지만 이렇게 베인스의 주름살을 내 얼굴에서 발견하며 한 살을 더 먹는 게 무척 우울하다.  


한 살 더 먹는 게 싫어서인지 생일날은 왠지 늘 우울하다.

피아 바다. 오클랜드에서 자동차를 타고 한참 가서 드디어 만났다. 길들여지지 않은 파도의 거침. 가슴이 벅차올랐다.
피아의 바다에서 그에게 보내는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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