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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Feb 10. 2019

나만의 독후활동이 필요해

김훈 작가와의 만남

그는 좀 피곤해 보였다. 편한 점퍼에 바지, 주황색 모자, 작고 알록달록한 캔버스 가방, 그 가방!!! 나는 너무나 그 가방을 사진으로 찍고 싶은 나머지 그의 가방을 받아 들고 있던 행사 관계자에게 가서 가방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볼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The bag was so him!!!. 
 
서울 사대문 안 사람들이 쓰는 말을 분명히 말하도록 가르쳤다는 어머니 때문인지 오랜 기자 생활을 한 까닭인지 그의 말은 정확했다. 호흡이 흐트러져도 주어와 동사가 문장이 마무리되기 전에 가지런히 제 자리를 찾았고, 전달하려는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담은 어휘가 그의 입에서 소리라는 기호를 달고 나오고 있었다. 역시나 피곤했던지 테이블 위에 벗어놓은 주황색 모자로 코와 입 언저리의 땀을 닦아냈다. 모자로 땀을 닦는 모습이 기이해 보이기 했고 또 무척 자연스럽기도 했다.
 
작가에게 책을 두고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수 백 페이지에 걸쳐서 말하고자 한 바를 책에 다 써놓았는데 써놓은 책을 읽으면 될 것을 또 책에 대해 무슨 말을 하라고 시킨다면 나라면 내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독자의 입장은 그렇게라도 작가와 소통하고 싶은 것이겠지. 
 
대학 때 알람으로 라디오가 켜지는 오디오를 아침시간에 라디오가 흘러나오게 세팅해 놓고 잠이 들곤 했었다. 어느 초여름의 아침햇살이 초라한 내 자취방 창으로 쏟아져 내릴 때 나는 오랫동안 마음에 연정을 품은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신경숙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잠에서 깼다. 외딴방이 출간되고 출판사의 프로모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나 보다. '사각거리는 사과 같다' 고 기억된다 그녀의 목소리가... 진행자의 질문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천진하게 쏟아내던 웃음소리도 사각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 이후에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따라다녔다. 이제부터 김훈의 책을 읽을 때면 그의 서울말과 얼굴을 닦던 주황색 모자와 끝내 사진으로 찍지 못한 캔버스 가방이 따라다닐까?    
 
후회한다. 아니 후회가 되었다. 집에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조퇴까지 하고 갔는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내가 세상 어디쯤에 있는지, 명확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청춘의 회오리가 내 속에서 거세지던 대학시절, 민예총이나 그 비슷한 단체에서 방학 때 했던 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닌 적이 있다. 신경림과 고은 등 화려한 강사진이었지만 그때도 수강을 후회했다. 이미 나는 그들이 쓴 책을 읽으며 격하게 그들과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로부터 책에 대해 들을 이야기가 없다고 느꼈다. 뭔가가 더 남아있다면 나 스스로의 독후 활동이라는 생각.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책으로 했고, 이제 나는 그 책에 대해 나와의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끝나지 않는 시간. 
그 속의 나의 삶.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016.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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