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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Mar 30. 2019

잘못된 결혼,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쓸쓸함

존 윌리엄스 "스토너"

우리는 누구나 많은 선택을 하며 삶을 살아간다. 아직 스물의 어디쯤에 있었던 나는 내가 하는 선택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겠노라 내 인생을 향해 치기 어린 선언을 하였다. 설령 시간이 흘러 그 선택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세상의 모든 입이 나를 향해 비난을 할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겠다고, 그런 당당한 삶을 살겠노라며, 새벽 어스름을 뚫고 밝아오는 나의 하루하루에 늘 자신만만했다. 삶은 내가 결심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세상 앞에 참 건방졌다. 젊었기 때문이리라.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 역시 많은 선택을 한다. 아들이 농사에 대한 지식을 쌓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대학 진학을 권유했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스토너는 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한다. 정직하고 고된 노동으로 흙처럼 검어진 부모의 얼굴 앞에 '가슴이 떨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자신의 이 결정을 전한다. 이렇게 시작된 영문학 교수 스토너의 인생은 대체로 즐겁지 않다. 여기서 "즐겁다"는 말이 감정적으로 행복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의 삶은 감정적으로 행복한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이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디스와의 결혼이다. 그는 결혼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부모의 바람을 저버리게 하고 누구도 막지 못하는 인생의 충만함을 문학에서 느낀 스토너는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연구가 책으로 나오는 혼자만의 시간에만 즐겁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 남편인 스토너를 경멸하는 아내는 그가 행복해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가 조금이라도 즐거워하는 것이 보이면 그것을 방해한다. 그를 서재에서 내쫓고, 딸아이와의 교감을 막고, 변덕을 부린다. 결혼생활이 '아무 감정도 남지 않은 원수와 지내는 것처럼' 불행해졌을 때 드디어 스토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캐서린을 만난다. 남편이 자신의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남편이 마음을 뺏긴 여자도 이디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별 중요하지 않은 존재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이 "그 여학생 이름이 뭐였더라?"며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뱉는다. 남편이 바람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이디스. 열지 말라는 상자를 열어 모든 불행과 슬픔이 넘쳐난 것처럼 스토너의 인생은 이디스와의 결혼으로 쓸쓸하기 그지없다.


내 마음이, 내 결심이,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던 젊음을 보내고 마흔의 중반을 향하는 지금을 맞이 하니 정작 내 인생을 결정했던 것은 내 결연함보다는 나를 감싸고 흐르던 세상의 방향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1994년도에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그리고 1997년도에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의 동기들과, 함께 졸업을 앞두고 있던 예비역 선배들은 당황하였고 취업을 위해 또는 학교에 남아 각자의 삶을 힘껏 씩씩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곧 새로운 밀레니엄이 당도하고 있었고 나는 영화 "해피엔드"를 보고 종로의 거리에서 새 천년이 오는 차가운 보신각 종소리를 들었다. 끝없이 흐르는 세상의 흐름 앞에 전과 다른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 두려웠다. 또 무엇이 다가올까 처음으로 그 흐름이 두려운 쓸쓸한 겨울이었다.


스토너 역시 그의 삶을 관통하여 흐르는 시간 앞에 나름의 쓸쓸함을 느꼈으리라. 1차 세계대전으로 모두 입대를 지원하는 가운데 그는 대학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젊은 날의 친구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뒤이어 터진 2차 세계대전으로 자이 가르치던 학생들이 전쟁터로 나간다. 비록 미국 본토에는 전쟁의 참혹함이 직접적으로 드리우지는 않았겠지만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세상 속 개인의 삶은 전쟁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 다툼 속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비극적 상황을 옆에 두고 살아간다면 무사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참으로 소중할 것이다. 아침에 따뜻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받으며 일터에 가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그 날의 즐거웠던 일을 재잘거리는 보통의 일상. 그러나 이디스와의 재앙 같은 결혼은 스토너에게서 일상의 따뜻한 행복감을 박탈하고 그의 삶을 전쟁보다 더 끔찍한 비극으로 만든다. 농부의 부지런함이 핏속에 흐르는 스토너의 근면한 하루하루는 일상의 행복이 결여되어 건조하고 쓸쓸할 뿐이다. 가족은 그에게 고통과 안타까움일 뿐 어디에도 그의 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이 그는 쓸쓸하고 외롭다.


인간이 어느 시간 위에 있든 외로움과  쓸쓸함은 어느 정도 따라붙는다. 그 시간이 1차 세계대전이든 IMF든 그 무엇이든. 그 쓸쓸함을 견디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 모든 견딤에 행복한 순간이 폭죽처럼 터져 나기를 감히 바라 마지않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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