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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Jan 23. 2020

나는 많이 아플 예정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소처럼 일 할 나를 위한 저녁 식탁

날을 앞두고 나는 계획했다. 나는 많이 아프겠다고. 그래서 이번 설 연휴에 시댁에 가지 않을 거라고. 울화병이 생기기는 했지만 울화병 심리적으로 나괴롭힐 뿐 내 몸을 심각하게 아프게 해 시댁에 가지 않을 수 있는 변명거리를 만들는 못 했다. 나는 정말 이번 설에는 시댁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야 한다. 그리고 설날 아침 모두를 위한 그 설날 세트를 차려 내기 위해 또 소처럼 일해야 한다.


시어머님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나에게 화를 낸다. 일 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아픈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고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러시는 줄은 알지만 "조심하지 않고!" 찡그린 얼굴로 내게 큰소리치는 시어머님을 마주하고 있는 나는 황당하고 서럽기 짝이 없다. 당신 딸이 칼질하다 다쳐서 손가락에 피가 뚝뚝 흐른다면, 목이 아파서 몸살기에 욱신거리는 몸이지만 쉬지 못하고 부엌일을 해야 한다면 과연 어땠을까? 만약 내가 친정에서 같은 일을 겪었다면 친정 엄마는 과연 시어머님처럼 내게 화를 냈을까? 그래서 나는 시댁에서 웬만큼 아프면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 왜 아프냐고 지청구를 들으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절이라고 친척들이 전화를 하면 우리 아무개 어미가 벌써부터 와서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고 자랑삼아 말씀하신다. 우리 집은 이렇게나 모든 것이 질서 있고 화목하다는 것을 며느리가 일찍 와서 부엌일 하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으신 것 같다. 나에게 손위 동서가 하나 있는데 시부모님 생에는 전화로 돈 십만 원 부쳤다고 말하는 것이 전부고 명절에는 명절 전 날 밤이 다 되어서야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참 속 편한 스타일이라서 시어머님이 속을 많이 태우고 이제는 아주 그러려니 하신다. 아들 며느리 별 탈 없이 잘 사는 것만도 고맙다며 큰 며느리에게 아무런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서도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하시는 시어머님이 나도 처음에는 안쓰러웠다. 래서 될수록 잘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애씀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된 나머지 내가 아파 일하지 못하게 되면 이제는 나에게 화를 내신다.


재작년 설이었다. 남편은 회사 출장으로 한 달을 집을 떠나 있었고 그 사이 설 명절이었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시댁에 갔는데 목이 붓고 온 몸이 욱신거리고 열이 났다. 그 몸으로 나물에 갈비, 잡채, 전, 저녁에 먹을 떡국까지 끓이고 설거지하고 누워있는데 늦게 와서 차려놓은 저녁 상에 정말이지 숟가락만 얹었던 손위 동서네 식구들과 시부모님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나는데 목이 쩍쩍 갈라지고 입이 써 침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아프다고 했지만 시어머님한테서 돌아오는 말은 아파도 어쩔 수 없다고 며느리가 된 이상 그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운전할 기력도 없었지만 아이들을 태운 채 시댁을 떠나오자마자 응급실에 갔다. 주사를 맞고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억지로 삼켰다. 아마 그때가 내 마음이 진심으로 시부모님을 좋아할 수 없게 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진심으로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이번처럼 울화병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울화병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지난여름 태풍 미탁다. 태풍 미탁이 쏟아놓은 엄청난 폭우로 시부모님 댁이 침수되었다. 여든이 넘은 두 노인이 밤새 집을 지키기 위해 빗물을 퍼내려고 어찌나 애썼던지 어깨를 방바닥에 누이고 있는 모습이 사 삶에 대한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고단하고 외로워 보였다. 가구를 옮겨 진흙을 씻어내고 닦느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며칠은 손톱이 빠지는 듯하고 온 몬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몸이 아픈 나와는 달리 남편은 마음을 많이 아파했다. 자기 부모가 낡고 오래된 집에서 또 이런 일을 당할까 몹시도 걱정이 된 남편은 대출로 시부모님께 집을 사드렸다. 물론 그 과정을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었다. 적당한 집을 찾았다, 대출을 받았다, 집수리를 한다, 이사를 한다. 나에게 이야기는 했다. 남편도 그 모든 과정에 신경 쓰느라 애를 많이 쓰고 힘도 들었다. 효자 아들인 남편에게는 그 상황이 나의 동의는 필요도 없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들이 자기 부모를 위해  집을 사드린다는데 반대할 수도 없이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집을 사줘서 고맙다고 둘이 열심히 벌어 갚으라고. 떻게 내 아들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며느리에게 그 모든 것을 참으로 쉽게 요구할 수 있을까?


아버님이 얼마간 집값을 보태 주시긴 했지만 남편 명의로 일억 가까이 대출이 생겼다. 지금껏 남편의 월급에서 내던 내 자동차세를 이제부터는 나보고 내라고 남편이 세금 명세서를 내게 건넨다. 그래서 나는 울화병이 생겼다. 시부모님은 새집에서 행복한데 나는 자동차세를 내야 하니 행복할 수가 없다. 이제 내일 새벽같이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고 또 손님처럼 들이닥치는 손위 동서 식구들을 맞이해야 하는 나는 울화병이 생겼지만 화를 낼 수 없다. 아파도 일해야 하고 화나도 일해야 하는 명절이 싫다. 울화가 치민다.


그래서 오늘 저녁 나를 위한 위로의 밥상을 차린다. 이 밥상이 나를 위로하기를,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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