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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Dec 31. 2019

다시는 김장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다

김장날 아침, 톳밥

나는 바다에서 나는 식물은 다 즐겨 먹는다. 역, 쇠미역, 파래, 다시마, 물김, 매생이, 톳. 김장에도 말린 청각을 물에 불려 물기를 꼭 짜 도마에 놓고 칼로 탕탕 내려쳐서 곱게 다져 양념에 함께 섞어 넣는다. 친정 엄마도 김장에 청각을 넣었는데 큼직하게 잘라 넣어서 청각이 김치에 작은 나뭇가지처럼 붙어 있었다. 엄마의 김치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었지만 김치에 있는 초록색 나뭇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맛있는 김치를 먹을 때도 늘 청각 골라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나는 김장을 할 때 청각을 될수록 작게 다진다. 그럼 아이들도 나도 청각이 김장 김치에 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먹을 수 있다. 그 시원한 바다향은 온전히 느끼면서. 찬바람이 부는 겨울은 바다에서 나오는 나물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오늘은 김장하는 날. 톳밥을 냄비에 안쳤다.


냄비에 미리 불려놓은 쌀에 물을 평소보다 적게 넣고, 깨끗이 씻은 톳을 작게 잘라 얹불에 올려 끓어오르면, 쌀과 톳을 골고루 섞어 약한 불로 마저 익히고 뜸 들인 냄비밥. 늘은 김장에 넣으려고 넉넉하게 사놓은 신선한 굴도 함께 넣다. 밥을 푸려고 냄비 뚜껑을 여는데 달콤한 바다향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얼굴에 와 닿는다. 향기로운 바다내음에 저절로 눈이 감기고 웃음이 난다. 렇게 달콤하고 향기로운 톳밥을 나는 늘 눈치 보면서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친정 엄마의 김장 김치에 있던 청각을 골라내고 먹었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그냥 야채도 아니고 바다에서 자라는 식물을 먹기가 쉽지 않을 거다 이 한다. 그래도 버젓이 밥을 푸고 있는 내게 "엄마 나는 다른 밥 주세요"하면 "오늘은 다른 밥은 없어. 양념장에 비벼먹어!"라고 싫든 말든 단호하게 말한다.


오늘은 김장하는 날. 내가 가장 수고하는 날이니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밥으로 아침상을 차린다. 이미 전날 양념을 만들고 배추를 절이느라 몸은 벌써 지치고 집은 큰 대야와 소쿠리, 김장을 담을 김치통으로 야단법석이라 될수록 간단하지만 든든한 메뉴인 톳밥을 골랐다. 식탁은 김장 재료가 널려있어 평소 과일 먹는 작은 앉은뱅이 상에 둘러앉았다.

열한 살 작은 아이가 '의외로 맛있다' 톳밥 한 그릇을 정말이지 의외로 금방 비워냈다. 큰 아이와 남편도 달걀국과 함께 잘 먹는다. 나는 서둘러 상을 치우고 김치 버무릴 준비를 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양념을 버무리는데 남편이 양념도 들어주고 절인 배추도 가져다주고 꽉 찬 김치통 뚜껑도 닫아 주면서 나를 도왔다. 그렇게 도와만 주면 참 좋았을 텐데 비난 섞인 잔소리를 한다. 왜 절인 배추를 사지 않느냐며 김장을 직접 하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느니, 요즘엔 다 김장 사 먹는다느니, 옛날처럼 겨울에 다른 반찬이 없을 때에나 김장을 많이 하는 거라느니, 자기는 사실 익은 김장 김치보다는 금방 한 생김치를 좋아해서 김장 김치를 그렇게 많이 안 먹는다느니, 김장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삼겹살을 먹기 위해 돼지를 직접 잡는 경우와 같다느니, 김장한다고 집안이 이렇게 난장판이 되는 것도 싫다느니 등등의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놓는 남편의 입을 고무장갑 낀 으로 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허리 아프게 김장을 하고 있는데 시댁에도 보내줄 거라 자기 부모도 먹을 건데 저러나 싶어서 정말 서운하고 섭섭하고 화가 났다. 김장 스무 포기하는 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나는 이 세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인양 꼭 그런 식으로 나의 고생에 대한 위로를 해야 하냐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그냥 입 닫고 다정하게 도와주는 남편 코스프레 하기가 그렇게 힘든 건가 속으로 한 바가지 욕을 하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김장은 끝내야 하기에 화를 꾹 참았다. 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김장을 하지 않겠노라고. 이런 비난을 들어가면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김장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다. 이런 잔소리를 듣지 않고 직접 한 김장으로 밥상을 차리려면 몰래 어디 가서 김장을 해 와야 할 판이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눈치 보며 차려놓은 톳밥을 결국 잘 먹었던 것처럼 김장도 해놓으면 김장김치로 끓여낸 김치찌개며 김치찜이며 다 잘 먹을 거면서 나를 눈치 보게 만드는 남편의 짜증을 들으며 일단은 결심했다. 다시는 김장을 하지 않겠노라고. 그러나 나의 김장에 대한 결심은 늘 지켜지지 못했다. 한 번 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내년에는 정말 절임배추를 사야지', '내년에는 정말 김장을 조금만 해야지'라는 결심을 했지만 다시 또 작년과 같은 과정의 반복이다. (그래도 올 해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김장을 반으로 줄이기는 했다.) 그래서 지켜볼 일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결심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뒷정리하느라 밤늦게까지 힘들었던 나에 비해 푹 자고 일어말간 얼굴을 한 남편의 "김장하느라고 어제 정말 고생이 많았어"라는 진심 어린 위로 앞에서도 김장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고 내년까지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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