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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Oct 04. 2019

다시 젊어진 기분

도서관에서 혼자 먹는 컵라면

혼자 카페에 가 차를 주문해 테이블에 앉으면 다시 젊어진 기분이 든다고 내 친구 말했다. 다시 젊어진 기분?... 글쎄 나는 언제 그런 기분이 들까? '내가 나이가 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 퇴근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흰머리카락과,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를 무릎 위에 잡힌 자잘한 주름, 그리고 비타민을 챙겨 먹지 않으면 왠지 하루 종일 피곤한 느낌적인 느낌까지.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그 시간 속에서 나의 몸은 노화의 과정 속에 있다. 서글프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어나는 일이니 특별히 억울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노화의 징후들을 발견할 때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유연한 근육만큼 유연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것은 노화를 지연시키려는 나의 노력일 뿐 다시 내가 젊어졌다고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다시 젊어진 기분을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오늘은 평일이지만 징검다리 연휴 사이 날이라 직장이 쉰다. 꿀같이 달콤한 오늘이다. 오전에 집안일을 후다닥 마치고, 헬스장에 가서 숙제하듯 운동하고, 빌려온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나는 도서관에 가는 것이 행복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기쁨이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다. 대학시절에는 동아리방에서 술 마시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도서관에서 보냈다. 마땅히 갈 곳도 없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도서관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도서관 책장 사이의 바닥에 앉아 평론가 김현의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한 장 한 장 내가 모르는 문제의 해답을 찾듯 정성 들여 읽었고, 마르크스의 소외론을 읽으며 자본주의의 몰 인간적 사회구조에 분노했다. 그곳엔 내가 알고 싶고 또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이 활자의 형태로 날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창비,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 등등의 계간지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해마다 등단하는 신예작가의 글은 어찌나 새롭던지 나는 경탄과 시샘으로 들끓었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 나를 저 멀리 내던져버리고 싶다가도 또 옆에 두고 위로해 주고 싶었던 변덕과 연민의 날들.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내가 만날 수 있다면 스물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걱정 말라고, 너는 잘 될 거라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 싶다.)


깊은 밤 옥탑방에서 나는 검은 밤하늘처럼 암울한 듯한 나의 미래가 두려워 젊음으로부터 어서 멀어지고 싶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젊음을 생각하니 내가 사랑했던 혹은 두려웠던 젊음의 모든 것들이 그저 소중한 그 무엇이 되어있다. 그리고 도서관은, 도서관 특유의 책 냄새는 여전히 내가 애정 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신호처럼 도서관의 책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진다.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도서관은 더 이상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려가 책을 읽어주는 곳이자 아이들이 읽을 책을 빌려오는 장소일 뿐 예전의 나를 위한 곳이 아니었다. 아이를 두고 혼자 도서관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와 함께 간 도서관에서 나를  위한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도서관에서  나를 위한 책을 빌려와 봤자 읽을 시간도 없었다. 도서관에는 자주 갔지만 정작 나를 위한 책 읽기와는 멀어졌다. 그렇게 길고 캄캄한 육아의 터널을 어찌어찌 지나 마흔의 중반을 앞두고 보니, 이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대출카드로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빌려 볼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온전히 나를 위해 도서관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육아의 터널을 지나온 나에게 축하를 보냈다. '지금이 제일 좋다는 느낌은 이런 것인가 보다' 아직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긴가민가한 애매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서 좋은 건 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비록 쉼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나의 육체는 늙어가지만 나는 바빴던 시간에서 놓여나고 있는 중이다. 내 앞에 또 어떤 바쁘고 정신없는 터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이 여유가 좋다.    


꿀같이 달콤한 오늘,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이 투명한 햇살 사이로 불어온다. 나는 운동을 마친 가벼운 몸으로 도서관에 걸어간다. 도서관에 도착하여 적당히 붐비는 정적 속 마음이 경건해지는 책 냄새를 맡으며 나만의 우주에 떠다니는 듯 나에게 집중한다. 다시 젊어지는 기분은 이런 것이리라. 아무 간섭 없이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의 자유로움과 여유.


오늘 나의 즐거운 식탁을 이곳에 차린다. 컵라면에 삼각김밥으로 함께 먹는 이 없는 밥상이지만, 평일 점심시간 도서관 휴게실에 차린 이 식탁보다 더 즐거운 식탁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시 젊어진 기분으로 맞이하는 나의 즐거운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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