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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Aug 16. 2020

무밥으로 만든 김밥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은 음식을 참 맛있게 먹는 사람을 알고 있다. 불어서 차가워진 떡국, 새알이 으깨져 한 덩어리가 된 팥죽, 생선 뼈에 붙어있는 생선 살, 그릇에 조금 남아있는 반찬을 한 데 넣고 비빈 밥을 먹으면서도 정말로 맛있게 먹는 사람을 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정말 맛있을까 싶어 숟가락을 들고 한 번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 바로 나의 엄마다.


사춘기 시절 내 일기장은 엄마를 비난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나는 세상 모든 것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고 세상 모든 것들에 딴지를 걸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 '왜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엄마가 이래도 되는 거야?', '나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고 그 기준에 맞추라고 밀어붙이면서 엄마는 이래도 되는 거야?' 라면서 사춘기 반항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 속을 썩이는 일탈을 저지른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아 성적이 떨어지거나, 부모를 대놓고 무시하는 막돼먹은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친구들의 리더십 있는 친구였고,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는 학생이었으며, 부모의 자랑이었다. 다만 원래부터 부리던 고집을 더 세게 부렸고, 말수가 줄어들었으며, 공부와 상관없는 책을 마구 읽어 재끼고 있었고, 다정하지 않은 딸이었지만 더 다정하지 않게 되었다. 기성의 질서를 마구 부정하고 싶던 나는 사사건건 엄마에게 성질을 부렸고, 엄마도 나의 성질머리를 참고만 있지는 않고 "어디서 이런 더러운 행색 머리를 하고 있어!"라고 큰 눈을 부라리며 나를 혼냈다. 그래서 나는 쓰고 또 썼다. 언제나 일기의 마지막은 '나는 엄마처럼 저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였다.


그런 나였다. 결혼 해 자식을 낳고 기르는 여자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인지 조금의 이해도 없던 사춘기의 나는 엄마의 밥상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난했다. 왜 이렇게 많이 해서 계속 계속 싫증 날 때까지 먹게 하는 거야? 먹지 않는 반찬은 왜 계속 상에 올리는 거야? 젓갈을 넣은 반찬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내가 제일 싫었던 밥상은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가 정성 없이 차렸다고 생각되는 아침밥상이었다. 어제 저녁 맛있게 먹고 남았던 반찬을 아침상에 그대로 올릴 때 나는 그 음식에 대한 어제 저녁의 좋은 기억까지도 불쾌하게 만드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런 아침 밥상은 대개 아버지가 출장 중일 때 차려졌다. 어제 저녁 맛있게 먹었던 오징어 볶음이 오늘 아침 숨 죽은 야채와 수분을 잃고 졸여져 검은 양념장을 뒤집어쓰고 접시에 아무렇게나 담겨있을 때 물론 나는 반찬투정 따위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밥상머리에서 어디 투정을 부리냐고 또 엄마의 호통을 들을 테니 나는 싫은 내색 없이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처럼 저렇게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엄마가 얼마나 피곤했을까, 엄마도 가끔씩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에는 나는 자신만의 아집에 갇혀있던 중학생이었다. 밥상을 차려주시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결혼을 하고 밥상을 매일 차려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그 긴 시간 밥상을 차려냈던 엄마의 수고로움이 애잔하고 내 철없음이 어리석다 후회된다. 엄마의 밥상을 비난하던 나를 뒤늦게 반성하며 엄마에게 받은 정성을 내 식구들에게 돌려주듯 밥상을 차릴 때 늘 정성을 들이고 싶다. 그리고 '엄마처럼 저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라며 굳세었던 나의 다짐이 떠오른다. 매일매일 갓 지은 밥과 반찬으로 화려하지는 않아도 질리지 않는 상을 차리려고 노력해도 정해진 생활비를 손에 쥐고 매일매일 새로운 음식으로 상을 차려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밥을 해 먹고 남아 있는 무밥을 냉장고에 넣어 놨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김밥을 말아 된장국과 함께 아침상을 차려낸다. 그리고 그 옛날 '나는 엄마처럼 저렇게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던 중학생 나의 눈치를 본다. '새로 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잘 먹는 김밥으로 만들었고 국도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라고 그 옛날 엄마의 밥상을 비난했던 중학생 나에게 조심스러운 변명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남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엄마처럼 살지 않겠노라 굳세었던 나의 다짐이 떠올라 머쓱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무밥과 톳밥. 음식을 많이 하는 엄마의 큰 손을 나도 닮아서 결국 남은 음식이 생긴다.  그대로 또 식탁에 차려내기가 미안해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김밥을 만든다

남동생이 결혼을 하고 엄마는 당신 아들이 예전과 달라졌다 느꼈는지 남동생에게 섭섭한 것이 많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자주 전화를 걸어 내게 그 하소연을 했다. 순하게 듣고 있다가 나도 어느 순간 지쳐서 "섭섭할 필요 하나도 없어. 엄마가 걔를 그렇게 키워서 그런 거야. 엄마가 그렇게 길렀으니 누굴 탓하겠어. 섭섭해하지도 말고 걔를 탓하지도 마!" 이런 싹수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는 위로가 필요했을 텐데 나는 위로가 필요한 엄마를 철없는 사춘기 중학생이 되어 비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첫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매 순간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내가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정작 자식 때문에 위로를 바라는 나의 엄마를 그렇게 무안을 주고 말았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누구나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서 마음대로 까불던 사춘기의 내 모습과 나는 절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내겠다 다짐했던 그 시절의 내 각오가 남은 무밥으로 김밥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는 오늘 아침 불현듯 떠오른다. 나는 과연 아무것도 모르고 까불던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티끌 하나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독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각오로 살고 있는지. 사춘기 중학생의 그 옹졸함을 벗어던지고 내 부모를 위로해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깊어졌는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부모를 위로할 줄 알아야 하는 나이에 와 다고. 아직도 철없는 사춘기 중학생의 옹졸함은 버려야 한다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누구나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노력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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